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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2

제30편 최린 — 신앙을 팔고, 권력을 쫓고, 끝내 자신을 잃은 사내 ① 인물 개요최린(崔麟, 1878 ~ 1956 추정)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천도교 지도자이자 3·1운동 민족대표였다.그러나 해방 전에는 제국에 충성한 종교인, 해방 후에는 신앙에서 제명된 인간으로 남았다. 그의 인생은 “하늘을 믿던 자가 권력을 믿게 된 이야기”였다.② 주요 활동과 사상1899년 동학 입교 후 천도교 개혁운동 주도.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여, 옥고를 치르며 “인내천(人乃天)” 사상 전파. 출옥 후 손병희 사후 교단 지도권을 장악, 종교 지도자에서 정치가로 변모. 초기의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를 믿었지만, 이상보다 권력과 생존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로 바뀌었다.③ 변절의 과정 — 왜 반일에서 친일로 돌아섰는가1️⃣ 3·1운동 실패의 절망감옥에서의 최린은.. 2026. 3. 27.
제15편 이용구 — 개화의 이름으로 민족을 저버린 자 ① 인물 개요이용구(李容九, 1868~1912)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동학(東學) 에 심취하며 평등과 자강의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때 농민과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 조선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뜻을 지녔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 이상은 왜곡되고 만다. 동학 내부에서 그는 개화와 문명화를 주장했으나, 이후 일본 세력의 근대화를 찬양하면서 “외세 의존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결국 그는 동학에서 제명당했고, 이 사건은 훗날 손병희가 천도교로 조직을 개편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동학에서 축출된 뒤 이용구는 “일본의 문명과 제도를 배워야 조선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따라1904년 송병준과 함께 일진회(一進會) 를 창립했다. 일진회는 표면적으로는 자강과.. 2025.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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