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54 제27편 여운형 — 좌우의 경계에서 조국을 꿈꾸다 ① 인물 개요온화한 미소 속에 강철 같은 결의를 품은 사상가, 정치가. 그는 해방 이전엔 언론인으로, 해방 후엔 통합의 정치가로 살았다. ‘조선의 미소’ 여운형(1886~1947). 그 이름은 지금도 ‘하나의 조국을 준비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 일본 유학과 독립의 자각여운형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일찍부터 신교육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차별을 겪으며 ‘지식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19년 11월, 일본 도쿄 제국호텔 연설에서 그는 외쳤다. “조선의 독립 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우리가 세우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이 연설은 단순한 독립선언이 아니.. 2026. 2. 1. 제26편 곽낙원 — 임시정부의 어머니, 한 세대를 품은 헌신의 이름 ① 인물 개요곽낙원(郭洛元, 1859~1939)은 백범 김구의 어머니이자,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숭고한 어머니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녀는 한 아들의 어머니를 넘어, 임시정부의 어머니로서 수많은 청년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김구의 독립운동이 불꽃이라면, 곽낙원의 삶은 그 불꽃을 지핀 등불이었다.② 청년 김구를 키운 손곽낙원은 가난했으나 단정하고 강직한 여인이었다. 치하포 사건으로 김구가 탈옥하자, 그녀는 아들의 죄를 대신해 옥살이를 했다. 그 고초 속에서 남편이 옥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원망 대신 “아들이 옳은 일을 했다면 그 길을 막지 말라.”며 담담히 감내했다. 그녀의 용서는 체념이 아니라 신념의 언어였다.③ 신앙으로 세운 신념곽낙원은 한학과 유교적 예절 속에 자랐지만, 후일 기독.. 2026. 1. 29. 제25편 김활란 — 여성 교육의 전사인가, 체제의 협력자인가 ① 인물 개요김활란(金活蘭, 1899-1970)은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개척자이자, 동시에 일제강점기 전시체제에 협력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학감·교장을 지내며 수많은 여성 지식인을 길러냈지만,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제국에 협력한 기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김활란은 인천 출생으로, 1918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미국 웨슬리언대학과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전 교수로 부임해 여성교육과 기독교 신앙을 결합한 교육을 추진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그녀의 행보는 달라졌다. 그녀는 애국금차회 발기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애국자녀단 조직 지도자로 참여하여 조선 여성과 학생들을 전시체제에 .. 2025. 12. 31. 제25편 김구 — 인간 김창수에서 백범 김구로 “내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백범일지』 「나의 소원」① 인물 개요김구(金九, 1876~1949)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은 지도자였다. 호는 백범(白凡)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의병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탈옥에 성공하였다.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광복 이후에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통일과 자주독립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의 생애는 『백범일지』라는 자서전 속에 그대로 녹아 있으며, 그것은 한 인간의 고백이자 한 민족의 기록이다.② .. 2025. 12. 29. 제24편 이광수 — 민족의 펜을 잃은 문학의 변절자 ① 인물 개요이광수(李光洙, 1892~1950)는 한국 근대문학의 창시자이자, 가장 극적인 변절의 상징으로 남은 인물이다. 그는 처음엔 민족의 계몽가, 후반엔 제국의 문필가였다. 그의 이름은 ‘한국 근대문학의 시작’이자, ‘지식인의 타락’을 함께 상징한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기독교계 학교 오산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메이지학원에 유학했다. 유학생 시절, 그는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외치는 청년지식인 운동의 중심이었다. 1919년 2·8 독립선언 때 도쿄 유학생 대표로 참여해 선언문 작성에 관여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선언은 곧바로 국내의 3·1운동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되었다. 그는 이후 귀국해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하며 문학과 언론을 통해 민족의 자각을.. 2025. 12. 25. 제23편 최남선 — 민족의 펜을 들고 일어섰던 천재, 제국의 논리로 무너진 지식인 ① 인물 개요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시인이자 사학자, 언론인, 교육자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대표적 변절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지식의 빛으로 민족을 일으켰던 그가, 결국 지식의 논리로 민족을 억눌렀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근대 조선 지식인의 가장 복합적 비극이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남선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학문을 배우고, 귀국 후 소년(少年) 잡지를 창간하여 근대적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은 민족의 각성과 청년의 진취를 상징했다. 1919년 그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참여했고, 옥고를 치르며 지식인의 양심으로 존경받.. 2025. 12. 22. 이전 1 2 3 4 ··· 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