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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무관학교2

제16편 이시영 — 형제의 뜻을 끝까지 지킨 마지막 사람 ① 인물 개요이시영(李始榮, 1868~1953) 은 안동 이씨 명문가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나, 형제들과 함께 가문의 재산을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에 올랐다. 그는 형 이회영이 사상의 불꽃으로 불타올랐다면, 냉철한 행정과 원칙으로 임시정부의 뼈대를 세운 사람이었다. 서간도에서 그는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실무와 행정, 그리고 독립운동 조직의 재정 관리까지 맡으며 실질적 중심 역할을 했다. 신흥무관학교는 훗날 청산리·봉오동 전투의 주역들을 길러낸 독립군의 요람이 되었다.② 임시정부의 실무자 — 좌우를 아우른 온건한 조정자상하이로 건너간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법무총장·국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살림과 제도를 책임졌다. 그는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던 시기에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온건한 우파 민족주의.. 2025. 11. 15.
제15편 이회영 — 귀족의 부를 버리고, 사상의 불꽃이 된 혁명가 ① 인물 개요이회영(李會榮, 1867~1932)은 조선 광해군 시절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오성과 한음의 오성) 의 후손으로, 조선 후기 정치·학문 양면에서 이름을 떨친 안동 이씨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집안은 명동·소공동·충무로 일대에 광대한 대지를 소유했고, 서울의 대표적 상류층이자 교육·관직의 명문가였다. 그러나 그는 부귀를 지키는 대신 나라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한일 합병의 소식이 전해지던 1910년 여름, 그는 형제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부귀는 나라 위에서 서 있다. 나라가 무너지면, 우리의 부도 죄가 된다.”그는 신분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양심으로 독립을 선택한 귀족 혁명가였다.② 여섯 형제의 결단이회영, 이석영, 이시영, 이호영, 이원영, 이철영 안동 이씨 여섯 형제는 한날 한..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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