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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회2

제29편 이상설 — 조국을 향한 혼, 바다로 흩어지다 ① 인물 개요이상설(李相卨, 1870~1917)은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외교 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의 선구자였다.그의 생애는 칼이 아닌 ‘지식’과 ‘의지’로 싸운 여정이었다. “조선의 독립은 총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시작된다.” 그가 일생을 걸쳐 남긴 신념이었다.② 학문과 교육으로 세운 독립의 꿈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이상설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관립 법관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법관으로 임용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불의한 재판과 부패한 관료제 속에서 정의로운 판단이 억눌리는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그는 결국 관직을 버리고, 조국의 미래는 무력보다 교육에 있다고 믿었다. 1906년, 간도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조선인 최초의 근대식 민족학교 서전서숙(瑞甸書塾) 을 설립했다. 서전서숙은 단순한 학교가.. 2026. 2. 27.
제8편 최재형 - 연해주에서 독립군의 불씨를 키운 조선의 큰 별 ① 인물 개요1860년(철종 11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난 최재형(崔在亨) 은 가난 속에서도 정의감이 깊었던 소년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수 밑에서 자랐는데, 가난과 편견 속에서 늘 “쓸모없는 입”이라며 구박을 받았다. 어린 최재형은 세상의 부조리보다 모멸의 말이 더 아팠다. 그래서 열세 살 무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향했다. 눈보라 속을 맨손으로 건너던 그는 거의 얼어 죽을 뻔했다. 그때 한 러시아 상선의 선장이 그를 구해주었다. 이 선장은 그를 데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옷과 음식을 주고, 러시아어를 가르치며 양자처럼 돌보았다. 이 사건이 최재형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나는 굶주림보다 모멸이 더 고팠다.하지만 이방인의 손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배웠다.” 그는..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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