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매국노4 제16편 윤시병 — 이름 없는 일진회 간부, 그러나 분명한 매국의 발자취 ① 인물 개요윤시병(尹始炳, 생몰년 미상)은 대한제국 말기의 관리이자 일진회 간부로 활동한 인물이다. 을사늑약 체결에 직접 서명한 ‘을사오적’은 아니었으나, 그 이후 일본의 보호정책을 옹호하고 합방 찬성 여론을 퍼뜨린 실무 세력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경상도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관직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 민심을 동원해 일진회의 조직 확장에 앞장섰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시병은 본래 개화적 사상을 표방하며 근대 교육과 산업 진흥을 주장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며 점차 일본 중심의 근대화론으로 기울었다. 그는 1904년 송병준·이용구 등이 주도한 일진회에 합류하여 지방 조직 운영과 회원 모집을 담당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그는 “조선이 일본의 문명을 받아야 살아남는다”는.. 2025. 11. 18. 제15편 이용구 — 개화의 이름으로 민족을 저버린 자 ① 인물 개요이용구(李容九, 1868~1912)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동학(東學) 에 심취하며 평등과 자강의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때 농민과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 조선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뜻을 지녔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 이상은 왜곡되고 만다. 동학 내부에서 그는 개화와 문명화를 주장했으나, 이후 일본 세력의 근대화를 찬양하면서 “외세 의존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결국 그는 동학에서 제명당했고, 이 사건은 훗날 손병희가 천도교로 조직을 개편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동학에서 축출된 뒤 이용구는 “일본의 문명과 제도를 배워야 조선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따라1904년 송병준과 함께 일진회(一進會) 를 창립했다. 일진회는 표면적으로는 자강과.. 2025. 11. 14. 제10편 이재곤 — 법으로 조국을 판 황족 ① 인물 개요이재곤(李載崑, ?~1911)은 조선 왕실의 직계 종친으로, 영조의 손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隱信君)의 양자이며, 남연군 이구와 군부인 여흥 민씨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즉, 고종과 같은 항렬의 황실 인물로, 왕실의 피를 이은 인물이었다. 나라를 지켜야 할 책임이 가장 무거웠던 그가, 결국 조선의 법과 왕실의 명예를 팔아 넘긴 첫 황족이 되었다.② 주요 행적이재곤은 대한제국 시절 법부대신으로 재임하며, 1907년 일본이 강요한 정미7조약 체결에 참여해 정미칠적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이 조약을 통해 조선의 군사권과 사법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앞장섰고, 이는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법으로 자멸하는 결과를 낳았다. 1910년 경술국치 당시에도 합병에 찬성해 일본 제국으로부터 남작.. 2025. 11. 3. 제9편 고영희 — 조약의 펜 끝, 나라의 살림을 넘긴 실무형 배신자 ① 인물 개요고영희(高永喜, 한성부 출생)는 역관(譯官) 고진종의 가문에서 태어난 관료로, 개화기 이후 내무·학부·탁지·법부 등 핵심 부처의 실무를 두루 거친 행정가형 인물이었다. 명민하고 꼼꼼한 행정가로 평가받았지만, 그 재능은 국가를 살리는 데가 아니라 식민 권력을 위해 쓰였다.② 주요 행적1890년대 후반부터 내무·학부(교육)·탁지(재정)·법부(사법) 요직을 전전하며, 조선 행정의 실무를 장악. 1907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당시, 이완용 내각의 학부·탁지 수장으로 참여. 일본 통감부가 요구한 재정 고문제와 예산 통제 체제를 실무로 설계·집행. 조선의 세입·세출, 차관 운용이 통감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도록 바꾸는 역할 수행. 고종의 강제 퇴위 및 군대 해산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묵묵히.. 2025. 11. 3.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