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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6

제22편 이인직 — 펜으로 나라를 팔고,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글을 쓴 사나이 ① 인물 개요이인직(李人稙, 1862~1916)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언론인·소설가·관료·정치가로 활동했던 대표적 친일 지식인이다. 그는 신문과 문학이라는 근대의 언어를 누구보다 빨리 익혔지만, 결국 그 언어를 제국의 논리를 전파하는 도구로 바꾸었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학문을 배우고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개화파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점차 일본 제국의 세력에 기대어 이완용의 비서 겸 정치적 후원자 관계로 들어가며 친일 노선을 뚜렷이 드러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이인직은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학문에 관심을 보였다. 1880년대 일본에 유학하여 근대 정치와 신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 후에는 독립신문, 제국신문.. 2025. 12. 5.
제19편 윤갑병 — 권력의 충성으로 민족을 팔아 넘긴 관리 ① 인물 개요윤갑병(尹甲炳, 1863~1943)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료와 정치 실무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개화에 호의적인 지방 엘리트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진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노선으로 전향했다.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며 강원도지사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다. 그는 명분보다 권력을 택했고, 결국 일본 제국의 충실한 하급 파트너로 남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갑병은 파평 윤씨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서북 지역에서 교육과 행정 실무에 종사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도우며 일본 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일본의 세력이 조선을 지배할 것을 확신했고, 결국 1904년 이용구·송병.. 2025. 11. 23.
제18편 정운복 — 배움으로 시작해, 배신으로 끝난 개화 지식인 ① 인물 개요정운복(鄭雲復, 1870~1920)은 황해도 평산 출신의 개화파 지식인으로, 근대 교육과 문명 사상을 내세웠으나 결국 일제에 협력하며 한일병합을 지지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해외 유학을 통해 서구 문물을 배우고 조선의 근대화를 꿈꿨지만, 그 꿈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일본 의존형 개화론’으로 변질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정운복은 1870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며 근대 문명과 자유주의 사상을 접했다. 그는 귀국 후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1899년 귀국 후 개화운동에 참여했지만, 그의 개혁은 점차 친일적 실용주의로 기울어갔다. 그는 대한제국 말기 흑산도로 유배되기도 했으며, 이 시기를 지나며 “조선의 근대는 일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2025. 11. 22.
제15편 이용구 — 개화의 이름으로 민족을 저버린 자 ① 인물 개요이용구(李容九, 1868~1912)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동학(東學) 에 심취하며 평등과 자강의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때 농민과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 조선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뜻을 지녔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 이상은 왜곡되고 만다. 동학 내부에서 그는 개화와 문명화를 주장했으나, 이후 일본 세력의 근대화를 찬양하면서 “외세 의존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결국 그는 동학에서 제명당했고, 이 사건은 훗날 손병희가 천도교로 조직을 개편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동학에서 축출된 뒤 이용구는 “일본의 문명과 제도를 배워야 조선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따라1904년 송병준과 함께 일진회(一進會) 를 창립했다. 일진회는 표면적으로는 자강과.. 2025. 11. 14.
제9편 서재필 — 펜으로 독립을 쓴 조선의 첫 지식인 ① 인물 개요1864년 전라남도 보성의 유학 집안에서 태어난 서재필은 조선의 개화와 민주주의를 세운 ‘지식의 혁명가’였다.그는 붓으로 싸웠고, 언론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의 글은 총보다 강했고, 그의 생각은 시대보다 한 세기를 앞서 있었다. 서재필은 조선의 개화파 정치가이자 언론인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를 심은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해 근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지식이 사람을 바꾼다’는 신념을 키웠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895년 귀국한 그는 조선 최초의 근대 신문 《독립 신문》을 창간했다. 신문의 이름부터 ‘독립’이었다. 그는 한글을 사용해 백성들이 직접 세상의 소식을 .. 2025. 11. 3.
제1편 홍영식 — 근대의 문을 연 사람 ① 인물 개요홍영식(洪英植, 1855 ~ 1884)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개화파 혁신가로, 한국 근대 우편 제도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조선을 **‘소통하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행정가형 개화파였다. 우정총국의 설립과 근대 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조선이 세계와 처음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홍영식은 젊은 시절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우체국·전신국 등 서양식 통신 제도를 조사했다. 그는 “국가의 힘은 정보의 속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 후 일본의 ‘우편의 아버지’ 마에지마 히사오를 만나 조선에 맞는 근대 우편 체계를 설계했다. 그 결과, 1884년 10월 1일 조선은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세계 22번째 우편 국가로 등재되었다. 홍영식은 ..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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