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인물 개요
1864년 전라남도 보성의 유학 집안에서 태어난 서재필은 조선의 개화와 민주주의를 세운 ‘지식의 혁명가’였다.그는 붓으로 싸웠고, 언론으로 세상을 바꾸었다. 그의 글은 총보다 강했고, 그의 생각은 시대보다 한 세기를 앞서 있었다. 서재필은 조선의 개화파 정치가이자 언론인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를 심은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해 근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의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지식이 사람을 바꾼다’는 신념을 키웠다.
② 주요 활동 및 사상
1895년 귀국한 그는 조선 최초의 근대 신문 《독립 신문》을 창간했다. 신문의 이름부터 ‘독립’이었다. 그는 한글을 사용해 백성들이 직접 세상의 소식을 알 수 있도록 했고,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라는 혁명적 사상을 퍼뜨렸다. 그는 또한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이 참여하는 정치, 토론의 광장, 공개적인 비판 문화를 만들었다. 서재필의 연설에는 언제나 이런 문장이 있었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면, 주인은 그 나라의 주권을 알아야 한다.”
이 한마디는 이후 대한제국을 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사상적 씨앗이 되었다.
그의 개혁은 권력자들의 반발로 좌절되었고,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의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고국을 잊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도 미국에서 조선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며 끊임없이 ‘펜의 전쟁’을 이어갔다.
③ 근대사적 의의
서재필은 조선의 근대 언론, 계몽, 민주 사상의 선구자였다. 그는 단순히 지식인이 아니라 “백성을 깨운 스승”이었다. 그가 창간한 《독립 신문》은 언론 자유의 출발점이 되었고 그가 세운 독립협회는 국민이 처음으로 정치에 참여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첫 실험장이었다. 그가 심은 사상은 훗날 3·1운동, 임시정부,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 헌법의 ‘국민주권’ 원리로 이어졌다.
④ 오늘의 시사점
서재필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식은 왜,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가?”
그는 지식을 권력의 도구로 쓰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 무기로 삼았다. 그가 남긴 펜 끝은 아직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비추고 있다.
⑤ 다온의 한줄 정리
“그는 펜으로 싸우고, 말로 일으켰다. 조선을 깨운 첫 지성, 서재필.”
⑥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록 「서재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독립기념관 인물DB 「이달의 독립운동가」,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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