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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살린 자

제1편 홍영식 — 근대의 문을 연 사람

by daonara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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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총국-AI 재구성 이미지

인물 개요

홍영식(洪英植, 1855 ~ 1884)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개화파 혁신가로, 한국 근대 우편 제도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조선을 **‘소통하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행정가형 개화파였다. 우정총국의 설립과 근대 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조선이 세계와 처음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

주요 활동 및 사상

홍영식은 젊은 시절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우체국·전신국 등 서양식 통신 제도를 조사했다. 그는국가의 힘은 정보의 속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 후 일본의우편의 아버지마에지마 히사오를 만나 조선에 맞는 근대 우편 체계를 설계했다. 그 결과, 1884 10 1일 조선은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세계 22번째 우편 국가로 등재되었다. 홍영식은 초대 우정총국 총판(局長) 으로 임명되어 국가 최초의 근대적 통신 행정을 직접 이끌었다. 그날은 조선이 스스로 세계와 대화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비극과 책임

하지만 우정총국의 개국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국 축하연이 열린 그날 밤, 갑신정변이 발발했고,홍영식은 정변의 상징으로 몰려 체포·처형되었다. 그가 만든 우편 제도는 단 3일 만에 무너졌고, 조선의 개혁의 문도 함께 닫혔다. 그의 죽음 이후 가문은 멸문했다. 부친 홍순목(洪淳穆) 은 아들의 뜻을 부정하지 않고 손자와 함께 독약을 마셨으며, 아내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형 홍만식(洪萬植) 은 자결에 실패한 뒤 옥에 갇혀 갑오개혁 때 복권되었으나, 1905년 을사늑약 소식을 듣고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동생 홍정식(洪貞植) 은 이름을 바꾸고 숨어 살며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다.

④ 세 가지 빛제도·책임·가족

첫 번째 빛 : 그는 조선을 세계와 잇는 근대의 제도적 문을 열었다.

두 번째 빛 : 도망치지 않고 조선에 남아 죽음으로 책임을 다했다.

세 번째 빛 : 그의 가족은 그 신념의 무게를 함께 감당하며 죽음으로 완결했다.

 아버지는 도덕으로, 아들은 제도로, 형은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서 책임으로 죽었다.”

이건 단지 한 집안의 비극이 아니라, 조선이 근대의 빛을 얻기 위해 치른 대가였다.

 오늘의 시사점

홍영식이 죽은 뒤 조선의 우편사업은 10년간 중단되었지만, 1895우정사의 설치와 함께 부활했고, 1897년 대한제국이 들어서며 전국으로 확장되었다. 오늘 우리가 쓰는 모든 우편과 통신의 뿌리에는 그가 열었던 첫 제도가 있다.  그의 죽음은 조선을 멈추게 했지만, 그가 만든 제도는 조선을 걷게 했다. 그의 피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길 위로 오늘도 우리의 편지가 오간다.

 다온의 한줄 정리

 그는 죽어서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일상 속에서 계속 걸어가는 사람이다.

⑦ 출처

『한국근대우편사』, 국립우정박물관

『갑신정변 연구』, 이태진, 서울대학교출판부

『한국통신사』, 김중태, 한울아카데미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국가기록원우정총국 설치 및 폐쇄 기록”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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