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명성황후2 제13편 민병석 — 권력의 향기 속에서 의혹을 남긴 대신 ① 인물 개요민병석(閔丙奭, 1858~1940)은 여흥 민씨 출신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보호하며 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문과에 급제한 뒤 내무대신·법부대신·의정부참정대신 등을 지내며 조선 말기 핵심 권력층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출세는 능력보다 인맥에 기대어 쌓은 권력의 탑이었다. 명성황후 사후에는 이완용 집안과 혼맥으로 이어지며, 조선의 2대 친일 귀족으로 불릴 만한 기반을 굳혔다.② 주요 행적민병석은 고종의 신임을 등에 업고 조선의 중심으로 올라섰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권력의 중심, 일본의 그림자를 향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부터 일본 측과 긴밀히 교류하며 친일 내각의 핵심 인물로 자리했고, 190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에 초청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 그의 이름은 그때부터.. 2025. 11. 10. 제3편 이근택 — 장인의 뜻을 저버린 사위, 충절 위에 선 배신 ① 인물 개요이근택(李根澤, 1852~1911)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성종의 아들 경명군의 13대손이었다. 아버지 이민승은 조선 후기 어영청 파총(御營廳把摠) 을 지냈으며, 군무와 방위를 담당하는 무반 가문 출신이었다. 이근택은 1884년(고종 21년) 무과에 급제했지만, 진정한 출세는 능력이 아닌 인연의 결과였다. 임오군란 당시 청주로 피신한 명성황후를 시중 들며 신임을 얻어, 이후 군부대신, 참정 대신 등 요직을 거치며 권력의 중심에 섰다.② 주요 행적근택은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무관으로 급부상했으나, 정치적 판단과 도덕적 신념은 언제나 권력 쪽으로 기울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1905) 그는 일본의 강압에 굴복해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서명은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2025. 10. 3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