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송병준3 제20편 송종헌 — 세습된 그림자 ① 인물 개요송종헌(1894~1949)은 한일병합을 주도한 송병준의 장남으로, 부친이 후작으로 책봉되자 아무런 공적 없이 자작(子爵) 작위를 세습했다. 그는 조선 귀족제의 2세대이자, ‘매국의 세습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나라를 팔아 권세를 얻었다면, 아들은 그 대가로 귀족의 특권을 누리며 식민 권력의 충실한 협력자로 살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910년 한일병합 직후, 부친 송병준이 후작으로 승작되자 자작 작위를 세습.1911년 이후, 조선귀족회 회원으로 등록되어 일본 귀족들과 교류하며 은사금과 귀족연금을 수령.1933년, 일제 식민통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일본의 식민 행정을 정당화하는 데 협력.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임전보국단·조선유도연합회 등 전시 협.. 2025. 11. 24. 제16편 윤시병 — 이름 없는 일진회 간부, 그러나 분명한 매국의 발자취 ① 인물 개요윤시병(尹始炳, 생몰년 미상)은 대한제국 말기의 관리이자 일진회 간부로 활동한 인물이다. 을사늑약 체결에 직접 서명한 ‘을사오적’은 아니었으나, 그 이후 일본의 보호정책을 옹호하고 합방 찬성 여론을 퍼뜨린 실무 세력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경상도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관직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 민심을 동원해 일진회의 조직 확장에 앞장섰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시병은 본래 개화적 사상을 표방하며 근대 교육과 산업 진흥을 주장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며 점차 일본 중심의 근대화론으로 기울었다. 그는 1904년 송병준·이용구 등이 주도한 일진회에 합류하여 지방 조직 운영과 회원 모집을 담당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그는 “조선이 일본의 문명을 받아야 살아남는다”는.. 2025. 11. 18. 제11편 송병준 — 변절의 설계자, 일진회의 얼굴 ① 인물 개요송병준(宋炳濬, 1858~1925)은 함경남도 장진 출신으로 본관은 은진이다. 부친은 율학훈도 송문수이며, 어린 시절 서얼 신분의 차별을 받았으나 재능과 야심으로 관직에 올랐다. 1871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참군,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구로다 기요타카 일행을 접대하면서 일본 세력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부터 송병준의 인생은 조선이 아닌 일본을 향하게 된다.② 주요 행적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며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그는 1886년 일본에서 김옥균 암살 밀명을 받았다. 그러나 실행 대신 김옥균과 가까워져 귀국 후 통모 혐의로 투옥, 민영환의 주선으로 석방되었다. 이 사건 이후 송병준은 방향을 완전히 틀어 일본으로 향했다. 1895년 무렵 일본으로 망.. 2025. 11. 6.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