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을사조약2 제11편 송병준 — 변절의 설계자, 일진회의 얼굴 ① 인물 개요송병준(宋炳濬, 1858~1925)은 함경남도 장진 출신으로 본관은 은진이다. 부친은 율학훈도 송문수이며, 어린 시절 서얼 신분의 차별을 받았으나 재능과 야심으로 관직에 올랐다. 1871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참군,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구로다 기요타카 일행을 접대하면서 일본 세력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부터 송병준의 인생은 조선이 아닌 일본을 향하게 된다.② 주요 행적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며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그는 1886년 일본에서 김옥균 암살 밀명을 받았다. 그러나 실행 대신 김옥균과 가까워져 귀국 후 통모 혐의로 투옥, 민영환의 주선으로 석방되었다. 이 사건 이후 송병준은 방향을 완전히 틀어 일본으로 향했다. 1895년 무렵 일본으로 망.. 2025. 11. 6. 제4편 이지용 — 왕족의 이름으로 나라를 팔고, 스스로를 변명한 자 ① 인물 개요이지용(李址鎔, 1854~1926)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17대손으로, 전주 이씨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형 흥녕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실질적인 왕족 신분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조정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젊은 시절부터 도박과 향락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왕족이라는 이름으로 방종을 일삼았다. 그러나 신분이 주는 특권은 그를 끝내 권력의 중심으로 이끌었다.② 주요 행적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그는 일본 측의 회유를 받고 1만 엔의 대가로 서명했다. 그의 펜 끝에서 조선의 외교권이 팔려나갔고, 그 순간부터 그는 권력의 길 위에 완전히 일본의 그림자가 되었다. 1년 뒤인 1905년, 그는 내부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서명하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이 .. 2025. 10. 30.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