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인물 개요
이지용(李址鎔, 1854~1926)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17대손으로, 전주 이씨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형 흥녕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실질적인 왕족 신분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조정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젊은 시절부터 도박과 향락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왕족이라는 이름으로 방종을 일삼았다. 그러나 신분이 주는 특권은 그를 끝내 권력의 중심으로 이끌었다.
② 주요 행적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그는 일본 측의 회유를 받고 1만 엔의 대가로 서명했다. 그의 펜 끝에서 조선의 외교권이 팔려나갔고, 그 순간부터 그는 권력의 길 위에 완전히 일본의 그림자가 되었다. 1년 뒤인 1905년, 그는 내부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서명하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이 되었다. 그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금전과 ‘후작’ 작위를 받았고, 도박과 유흥으로 그 재산을 탕진하며 조선 왕족 사회의 타락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을사조약 체결 후, 민심이 들끓자 그는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현실을 택한 최명길처럼 행동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최명길은 백성을 살리려 굴복했으나, 이지용은 백성을 팔아 자신의 안락을 산 자였다. 그의 추락은 백성들의 조롱으로 이어졌다. 기생 한 명이 그의 첩이 되라는 요구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역적의 첩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이지용의 생애를 요약했다.
③ 근대사적 의의
이지용은 왕족의 혈통으로 권세를 얻고, 그 권세로 조국을 팔아 넘긴 자였다. 그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변절이 아닌, 조선 왕가 몰락의 상징으로 남았다. 조선의 몰락이 외세의 힘 때문만은 아니었다. 권세와 이익에 눈이 먼 ‘내부의 왕족들’이 먼저 조국을 버렸기 때문이다.
④ 오늘의 시사점
권력은 순간의 영광을 주지만, 도덕을 잃은 권력은 영원한 죄가 된다. 이지용은 현실의 이익을 택했지만, 그 선택은 백 년의 부귀보다 더 긴 역사의 수치로 남았다. 배신은 언제나 변명으로 시작해, 심판으로 끝난다.
⑤ 다온의 한줄 정리
배신은 변명이 될 수 없고, 권력은 죄를 덮지 못한다 — 이지용의 이름처럼.
⑥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독립기념관 《친일인명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귀족열전》(1910)
《매일신보》, 1906년 2월호
민족문제연구소 구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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