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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팔은 자26

제7편 임선준 — 조용히 서명한 관료, 조국의 숨을 멈추게 하다 ① 인물 개요임선준(林善準, 1851~1910)은 한성부 출신으로, 충청북도 진천을 본관으로 한 진천 임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리로 진출하던 명문 사대부 가문으로, 조선 후기의 중앙 관료층에 속한 ‘안정된 권세 가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과 공부에 능했고, 1885년(고종 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수찬, 승정원 주서, 그리고 시종원 좌시종 등 왕실 근처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온화하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신중함은 결국 침묵으로 공모한 배신의 형태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임선준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학부대신, 내부대신 등 요직을 거치며 조선 후기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1907년,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며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을.. 2025. 10. 31.
제6편 이병무 — 권력을 지탱한 충성, 조국을 팔아넘긴 이름 ① 인물 개요이병무(1852~1926)는 조선 후기 무반 가문 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겉으론 왕실에 충성하는 인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대의 권력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이름은 충성의 탈을 쓴 배신, 권력의 안락함에 길든 관료의 상징으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이병무는 1900년 일본과의 유착으로 구금되었으나, 곧 석방된 뒤 친일 세력과 결탁해 세력을 확장했다. 1907년 정미7적 중 한 사람으로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앞장서며, 조선의 무장 독립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는 일본의 보호를 받는 체제가 조선의 ‘안정’이라고 믿었고, 결국 그 안정은 식민지의 서막이 되었다.③ 근대사적 의의이병무는 ‘왕실의 충신’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왕조 체제의 잔불에 기대어.. 2025. 10. 31.
제5편 권중현 — 성웅의 피로 권세를 씻은 자 ① 인물 개요권중현(1854~1934)은 충청북도 영동 출신으로, 조선 명문 무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권율 장군의 9대손, 모친은 이순신 장군의 9대손으로, 두 ‘성웅(聖雄)’의 충절이 한 혈통에 모인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피를 따라가지 못했다. 음서(蔭敍), 즉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에 나서는 제도로 관직에 진출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가문의 이름으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삶은 충의의 혈통이 권세의 욕망으로 변질된 한 예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권중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오늘날의 외교부 장관 격)으로서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서명자, 즉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서명은 국권 상실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고, 조선의 자주권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더 .. 2025. 10. 31.
제4편 이지용 — 왕족의 이름으로 나라를 팔고, 스스로를 변명한 자 ① 인물 개요이지용(李址鎔, 1854~1926)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17대손으로, 전주 이씨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형 흥녕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실질적인 왕족 신분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조정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젊은 시절부터 도박과 향락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왕족이라는 이름으로 방종을 일삼았다. 그러나 신분이 주는 특권은 그를 끝내 권력의 중심으로 이끌었다.② 주요 행적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그는 일본 측의 회유를 받고 1만 엔의 대가로 서명했다. 그의 펜 끝에서 조선의 외교권이 팔려나갔고, 그 순간부터 그는 권력의 길 위에 완전히 일본의 그림자가 되었다. 1년 뒤인 1905년, 그는 내부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서명하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이 .. 2025. 10. 30.
제3편 이근택 — 장인의 뜻을 저버린 사위, 충절 위에 선 배신 ① 인물 개요이근택(李根澤, 1852~1911)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성종의 아들 경명군의 13대손이었다. 아버지 이민승은 조선 후기 어영청 파총(御營廳把摠) 을 지냈으며, 군무와 방위를 담당하는 무반 가문 출신이었다. 이근택은 1884년(고종 21년) 무과에 급제했지만, 진정한 출세는 능력이 아닌 인연의 결과였다. 임오군란 당시 청주로 피신한 명성황후를 시중 들며 신임을 얻어, 이후 군부대신, 참정 대신 등 요직을 거치며 권력의 중심에 섰다.② 주요 행적근택은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으며 무관으로 급부상했으나, 정치적 판단과 도덕적 신념은 언제나 권력 쪽으로 기울었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1905) 그는 일본의 강압에 굴복해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서명은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2025. 10. 30.
제2편 박제순 — 독도의 침묵, 나라를 팔아넘긴 입 ① 인물 개요박제순(朴齊純, 1858~1916)은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상도촌(현 용인시 처인구) 출신으로, 반남 박씨 가문 출신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였다. 조선 말 과거에 급제하여 내무·외무·참정대신 등을 지냈으며,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의 집안은 왕실과 먼 혈연으로 이어진다는 설도 있으나, 사료상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초기에는 관료로서 개화 정책에 참여했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세력이 조선에 깊이 뻗치자 일본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충청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일본군 및 관군과 연합하여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섰다. 1905년 외부대신(外務大臣) 으로 있으면서 을사조약 체결에.. 2025.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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