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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3

제8편 최재형 - 연해주에서 독립군의 불씨를 키운 조선의 큰 별 ① 인물 개요1860년(철종 11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난 최재형(崔在亨) 은 가난 속에서도 정의감이 깊었던 소년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수 밑에서 자랐는데, 가난과 편견 속에서 늘 “쓸모없는 입”이라며 구박을 받았다. 어린 최재형은 세상의 부조리보다 모멸의 말이 더 아팠다. 그래서 열세 살 무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향했다. 눈보라 속을 맨손으로 건너던 그는 거의 얼어 죽을 뻔했다. 그때 한 러시아 상선의 선장이 그를 구해주었다. 이 선장은 그를 데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옷과 음식을 주고, 러시아어를 가르치며 양자처럼 돌보았다. 이 사건이 최재형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나는 굶주림보다 모멸이 더 고팠다.하지만 이방인의 손에서 인간의 따뜻함을 배웠다.” 그는.. 2025. 10. 31.
제7편 조마리아 - 민족의 신념을 세운 어머니 ① 인물 개요1860년 황해도 해주의 깊은 신앙심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조마리아는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조선의 어머니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나라를 잃은 시대 속에서 한 어머니의 믿음이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그녀의 신앙은 단단했고, 그 믿음은 아들을 ‘정의의 사람’으로 길러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마리아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늘이여, 내 아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그녀는 신앙으로 아들의 길을 받아들였다.② 옥중 편지 — 어머니의 기도💌 다음은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옥중편지의 주요 내용이다. “네가 나라를 위하여 그 일을 하였다 하니 어미로.. 2025. 10. 31.
제6편 — 안중근 - 피로 맹세하고, 정의로 쏘다 ① 인물 개요1879년(고종 1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安重根)은 무기를 들기 전, 먼저 교과서를 들었던 사람이다. 그의 독립운동은 총보다 붓에서, 복수보다 교육에서 시작되었다. “나라의 기운은 글에서 일어난다.”그는 백성의 눈을 깨워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훗날 총성과 평화론으로 이어졌다.② 교육으로 시작된 독립 — 삼흥학교와 돈의학교1906년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학교(三興學校) 를 세웠다. ‘나라의 흥, 교육의 흥, 도의의 흥’ 세 가지를 일으킨다는 뜻이었다. 그는 직접 교사로 나서 아이들에게 국문·산술·체조·윤리를 가르쳤다. 이듬해에는 황해도 안악군에 돈의학교(敦義學校) 를 세웠다. ‘의(義)를 돈독히 한다’는 뜻처럼 가난한 농민 자녀에게 글과 실용기술을 무료로 가르쳤다...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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