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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살린 자

제14편 윤세주 — 싸움의 끝에서 사라진 불꽃

by daonara 202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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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주 동상 - AI 재구성 이미지

 인물 개요

윤세주(尹世胄, 1900~1942)는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약한 나라의 청년이 배움을 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조국의 현실에 분노했다.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지만 일제의 식민지 교육에 저항해 자퇴하고 귀향한다. 이 시기 그는 같은 지역 출신의 청년 김원봉을 만나며 생애의 길을 결정짓게 된다. 윤세주는 스스로를펜보다 총을 들어야 할 세대의 사람이라 여겼고, 그 결심은 곧 망명으로 이어졌다.

 국내 활동과 사상 형성

10대 후반의 윤세주는 이미 항일학생운동에 연루된 인물이었다. 경성 시절 그는 일본인 교사들의 차별적 발언에 항의하며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는 학교에서 배움은 죄다라며 퇴학을 감수했다. 고향 밀양으로 돌아온 그는 청년 지식인들과 함께 소규모 독서회와 비밀 강연회를 열며 민족 계몽 활동을 벌였다. 이 모임은 후일 김원봉의 의열단으로 이어지는 지역 청년 항일 네트워크의 시초가 되었다. 윤세주는지식은 민중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학교 대신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중국으로의 망명과 의열단

1920,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다시 만난 김원봉의 권유로 비밀결사 의열단에 합류했다.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 기관과 친일 세력을 응징하기 위한 무장 항일 단체였다. 윤세주는 폭탄을 던지는 행동대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의열단의 이념을 체계화한 이론가였다. 그는행동 없는 사상은 죽은 사상이고, 사상 없는 행동은 맹목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의열단 내부의 강령과 목표를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윤봉길 의거 이후조선의용대 창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 이후, 중국 정부는 조선 독립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포착한 김원봉과 윤세주는 의열단을 재조직하고 보다 체계적인 무장 부대를 구상한다. 1938, 두 사람은 함께 조선의용대를 창립한다. 윤세주는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중국 각지에서 청년 대원들을 훈련시키고 항일 심리전, 전단 살포, 첩보활동 등을 지휘했다. 그는 전투 뿐 아니라 군사·정치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그가 강조한 말은총은 독립의 도구일 뿐, 그 총을 쥐는 사람의 정신이 진짜 독립이다.”였다.

 마지막 전투와 순국

1942 6, 중국 후베이성 정양(鄭陽)에서 조선의용대는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에 돌입했다. 윤세주는 선두에서 지휘하다 부상을 입고 끝내 전장에서 전사했다. 그의 나이 서른두 살. 전투가 워낙 치열해 시신은 끝내 수습되지 못했다. 동료들은 전투가 끝난 뒤에도 그를 찾았지만 이미 일본군의 점령으로 현장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훗날 중국인 마을 사람들이 윤세주와 대원들의 시신을 함께 수습해 정양 인근 공동 묘역의 중국인 묘소 한 켠에 합장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죽음 이후에도 이름 없는 묘지 속에서 ‘국경을 넘어선 혁명가로 남았다.

 김원봉의 회고

김원봉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세주는 내 오른팔이었고, 싸움의 의지를 잃지 않은 마지막 사람이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전사(戰死)가 아니라 무장투쟁의 신념이 끊기지 않았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조선의용대는 이후 광복군으로 계승되며 대한민국 군대의 뿌리 중 하나가 된다.

 근대사적 의의

윤세주는 김원봉의 의열 정신과 광복군의 조직 정신을 이어준 사상적·실천적 연결자였다. 그는 조선의용대 창설을 통해 의거 중심의 투쟁을 조직적 항일전선으로 발전시켰고, ‘민족’과민중을 함께 해방해야 한다는 진보적 민족주의 노선을 제시했다.

그의 희생은 독립운동이 개인의 영웅담을 넘어 조직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오늘의 시사점

윤세주는 명예나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그가 바랐던 것은끝까지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그의 시신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의 신념은 오늘의 군대와 시민정신 속에 살아 있다. 윤세주가 남긴끝까지 싸움이란 말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뜻한다.

⑨ 다온의 한줄 정리

 그는 시신이 묻힌 곳조차 알 수 없지만, 그의 불꽃은 광복군의 심장에 남았다.”

⑩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록 「윤세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총서)

『밀양의 인물사』(밀양문화원, 2005)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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