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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살린 자

제16편 이시영 — 형제의 뜻을 끝까지 지킨 마지막 사람

by daonara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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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동상 - AI 재구성 이미지

 인물 개요

이시영(李始榮, 1868~1953) 은 안동 이씨 명문가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나, 형제들과 함께 가문의 재산을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에 올랐다. 그는 형 이회영이 사상의 불꽃으로 불타올랐다면, 냉철한 행정과 원칙으로 임시정부의 뼈대를 세운 사람이었다. 서간도에서 그는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실무와 행정, 그리고 독립운동 조직의 재정 관리까지 맡으며 실질적 중심 역할을 했다. 신흥무관학교는 훗날 청산리·봉오동 전투의 주역들을 길러낸 독립군의 요람이 되었다.

 임시정부의 실무자좌우를 아우른 온건한 조정자

상하이로 건너간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재무총장·법무총장·국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살림과 제도를 책임졌다. 그는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던 시기에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온건한 우파 민족주의 노선을 견지했다. 1930년에는 안창호·조소앙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창당해 분열된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하려 노력했다. 그는 늘직함이 아니라 신념이 나라를 세운다고 말하며 조용히 실무와 도덕의 중심을 지켰다.

감시만어(感時漫語)』 편찬사론 속의 자성

망명 생활 중에도 붓을 놓지 않은 그는 『감시만어』라는 사론(史論)을 집필했다. 제목 그대로세태를 느끼며, 시대를 논한 글로 조선 지식인 사회의 무기력과 분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썼다.  나라가 망한 것은 무력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감시만어』는 단순한 수필이 아니라, 지식인들에게양심의 회복을 요구한 도덕적 선언이었다.

 해방 이후세 가지 길, 한 신념

1945년 해방을 맞은 그는 여섯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는기쁘지 않았다. 형제들은 모두 조국을 보지 못하고 떠났기 때문이라 적었다. 그는 해방 후에도 세 가지 길을 걸었다.

1️ 정치대한독립촉성국민회 창립

1946, 이승만·김구 등과 함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세워 새 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정치의 목적을 권력이 아닌도덕 회복으로 규정했다.

2️ 종교대종교 신앙의 실천

대종교 신자로서홍익인간(弘益人間)”의 가르침을 독립운동과 국민 교육의 근본 가치로 삼았다.

3️ 교육신흥무관학교 정신의 계승

서간도에서 세운 신흥무관학교의 뜻을 이어 광복 후 성재학원을 설립했다. 이 학원은 훗날 경희대학교의 전신으로 발전했다. 그는교육은 나라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길이라 말했다.

 대국민 성명서전쟁보다 두려운 것은 부패였다

1951 6·25전쟁의 한복판, 부산 임시정부 시절. 나라 안팎은 혼란했고, 피난 정부는 군비와 전쟁 물자를 둘러싼 부패와 권력 다툼으로 어지러웠다. 이승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 세력을 탄압했으며, 전쟁의 위기를 정치적 독재 강화의 수단으로 삼고 있었다. 이시영은 그 현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국민의 피로 마련된 군비를 탐하는 정권은 더 이상 나의 조국이 아니다.”라며 1951 5, 부통령직을 내려놓고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다.

 나는 권력보다 양심을 택한다. 전쟁 중이라 하여도 도덕은 무너져선 안 된다. 부패한 정권과 함께할 수 없기에 부통령직을 내려놓는다.”

이 성명은 단순한 사직서가 아니라, ‘전쟁보다 부패가 더 무섭다는 경고장이자 도덕의 회복을 촉구한 공개 항의문이었다. 그의 사퇴는 대한민국 최초의 양심적 정치 사퇴로 기록되었고, 그의 결단은 오늘날까지정치인의 도덕적 기준을 상징한다.

 마지막 길권력보다 형제의 곁으로

부통령직 사퇴 이후 그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형제들이 피로 지킨 나라를 부패로 더럽힐 수 없다며 경기도 의왕 자택으로 내려갔고, 1953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마지막 말은 짧았다.

 이제 형제 곁으로 간다.”

 근대사적 의의

이시영은 정치인보다 양심인이었다. 그의 『감시만어』는 지식인의 각성, 그의 사퇴는 정치인의 양심, 그의 교육 활동은 미래 세대의 양심을 일깨웠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있었으나 언제나 권력 밖을 바라봤고, 해방 후 혼란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은 마지막 청렴한 혁명가였다.

⑧ 다온의 한줄 정리

 형제들이 피로 세운 나라를, 그는 양심으로 지켰다.”

⑨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록 「이시영」

독립기념관 인물DB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시영」

『이회영과 여섯 형제들』(민음사, 201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한민국 건국인물사』(2022, 한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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