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인물 개요
홍범도(洪範圖, 1868~1943)는 평안남도 평원 출신으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지만, 젊은 시절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스님들을 도우며 한글과 한문을 익혔다. 그곳에서 세상의 도리를 배우고, 조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불가에 몸을 의탁했지만 마음은 늘 백성의 삶에 있었다. 비구니와 운명적 사랑을 이루었으나 환속을 하는 과정에서 건달패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생이별했고, 그 일은 상처로 남았다. 그는 세상에 홀로 남아 밑천을 털어 총 한 자루를 사들였고, 포수로서 산을 오르내리며 사격술을 익혔다. 그 손끝의 정확함은 훗날 독립전쟁의 운명을 바꿀 한 발이 된다.
② 의병의 시작 — 총을 든 백성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소식이 퍼지자, 홍범도는 들고 있던 사냥총을 다시 들었다.
“짐승이 아니라, 나라를 해친 자를 잡겠다.”
그는 을미의병에 가담해 일본군과 친일 관리들을 공격하며 의병장의 길에 들어섰다. 1907년 고종이 군대를 해산하자 그는 해산 군인들과 합류해 조선 땅 곳곳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쳤다. 그는 지리와 민심을 모두 아는 ‘산의 장군’이었다.
③ 봉오동 전투 — 포수의 손끝이 독립을 쏘다
1920년 6월, 간도 봉오동 골짜기.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은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안무의 국민회군과 연합해 일본 정규군을 유인·포위·섬멸했다. 지형을 꿰뚫은 매복 전술과 정확한 사격으로일본군 500여 명을 전사시키며 독립전쟁의 첫 대승을 거뒀다.
“총소리는 산을 흔들고, 그 메아리는 조선을 깨웠다.”
이날 이후 그의 이름은 ‘포수 장군’에서 ‘대한독립군 사령관’으로 불렸다. 이 승전의 기세는 곧 청산리로 이어져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간도의 별이 되었다.
④ 봉오동 이후 — 왜 그는 소련으로 향했는가
그러나 승리의 뒤편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청산리·봉오동 전투 이후 일본군은 간도 참변을 일으켜 한인 마을과 독립군 기지를 불태웠다. 수천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며, 독립군은 더 이상 만주 땅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홍범도는 생존자들과 부하들을 이끌고 러시아령 자유시(Свободный)로 이동했다. 그곳은 당시 볼셰비키 정부의 영향 아래 있었고, 공산주의 세력과 독립군 간의 갈등이 점차 깊어졌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이 발생했을 때, 홍범도는 전우들끼리 총을 겨누는 것을 막기 위해 무장 해제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항복이 아니라 동포를 지키기 위한 양심의 결단이었다.
⑤ 강제이주의 비극 — 스탈린의 열차에 실린 영웅
자유시 이후 그는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전전하며 극동 한인 사회의 어른으로 살아갔다. 하지만 1937년, 스탈린 정권은 “일본 첩보의 가능성”을 이유로 약 17만 명의 한인을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당시 홍범도는 이미 70을 넘긴 노병이었다. 그는 연해주를 떠나는 열차 안에서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선의 산은 멀지만, 내 마음은 아직 거기 있다.”
그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송되어 연극단 문지기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조국은 여전히 멀었고, 그의 손에는 더 이상 총이 없었다. 하지만 노년의 그에게도 조국은 여전히 싸움의 이름이었다.
⑥ 귀향 — 늦은 귀환, 아직 끝나지 않은 논쟁
1943년, 장군은 카자흐스탄의 한 병상에서 눈을 감았다. 묘비엔 단 하나의 문장만이 새겨졌다.
“조선독립군 사령관 홍범도,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자.”
78년 후인 2021년, 그의 유해는 대한민국으로 봉환되었다. 그는 돌아왔지만, 여전히 논쟁 속에 있다. 누군가는 그를 ‘소련에 협력한 장군’이라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민족과 함께 유배된 마지막 영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길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조선의 백성, 조선의 독립이 있었다.
⑦ 근대사적 의의
홍범도는 무장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디아스포라의 기억 그 자체다. 그의 총성은 나라를 깨웠고, 그의 침묵은 역사를 증언했다. 그는 민족의 영웅이자, 제국의 희생자였으며, 끝까지 ‘조선 사람’으로 살다간 인간이었다.
💙 다온의 한줄 정리
“총을 들던 손이 마지막엔 민족의 이름을 쥐었다.”
📚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록 「홍범도」
독립기념관 인물DB
『홍범도 평전』 김삼웅 (2020)
『한국독립운동사 강의』 한홍구 (2019)
『연해주 한인과 자유시참변 연구』 조세열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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