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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팔은 자

제20편 송종헌 — 세습된 그림자

by daonara 2025.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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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의 세습 - AI 생성 이미지

 인물 개요

송종헌(1894~1949)은 한일병합을 주도한 송병준의 장남으로, 부친이 후작으로 책봉되자 아무런 공적 없이 자작(子爵) 작위를 세습했다. 그는 조선 귀족제의 2세대이자, ‘매국의 세습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나라를 팔아 권세를 얻었다면, 아들은 그 대가로 귀족의 특권을 누리며 식민 권력의 충실한 협력자로 살았다.

② 주요 활동 및 사상

1910년 한일병합 직후, 부친 송병준이 후작으로 승작되자 자작 작위를 세습.

1911년 이후, 조선귀족회 회원으로 등록되어 일본 귀족들과 교류하며 은사금과 귀족연금을 수령.

1933, 일제 식민통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일본의 식민 행정을 정당화하는 데 협력.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임전보국단·조선유도연합회 등 전시 협력 단체의 후원자로 활동하며 국방헌금을 헌납.

1940년대, 근로정신대 격려회와 전시물자 헌납 운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침략전쟁을성전(聖戰)’으로 미화.

그는 단지 매국의 유산을 물려받은 데 그치지 않고, 배신을 제도화하고 세습한 세대로서 일제의 식민 체제를 유지하는 내부 협력자 역할을 했다.

 근대사적 의의

송종헌은 조선귀족 제도의 실체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그의 삶은 한 세대의 매국이 어떻게 혈통과 제도 속에 고착되어 갔는가를 보여준다. 아버지가 나라를 팔았다면, 아들은 그 대가로 얻은 체제를 유지하며 ‘귀족의 충성을 일제에 바친 셈이었다. 그의 존재는 한 사람의 부끄러운 과거를 넘어, 식민지 협력의 세습 구조가 어떤 형태로 유지 되었는지를 증명한다.

 오늘의 시사점

1945년 광복 이후 조선귀족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송종헌은 상당한 재산을 유지한 채 1949년 해방된 조국에서 조용히 생을 마쳤다. 그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2002친일반민족행위자 708인 명단에 오르며 다시 역사 앞에 불려 나왔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부가 아니라청산되지 못한 구조였다.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누렸던 특권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다온의 한줄 정리

 아버지가 팔아 넘긴 권력을, 아들은 죄의식 없이 상속받았다.

⑥ 출처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매국의 계보조선귀족 76인의 삶』, 한울아카데미

『일제하 조선귀족과 식민지 권력』, 서울대학교출판부

『조선총독부 중추원 명단집』, 국사편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 708인 명단』,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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