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인물 개요
박흥식(朴興植, 1903~1994)은 조선의 첫 근대 백화점 ‘화신백화점’의 설립자이자, 일제강점기 경제형 친일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그는 언뜻 보기엔 근대 자본가,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지만 그의 부는 일본 제국의 군수산업과 소비체제 위에서 만들어졌다. 조선의 자본이 아니라 제국의 자본에 기대어 성장한 남자.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돈으로 권력을 산 친일 재벌’의 상징으로 남았다.
② 주요 활동과 친일 행적
1. 자수성가의 신화, 그러나 제국의 시장 안에서
평안남도 용강 출신인 그는 1926년 상경해 인쇄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31년 경성 종로에 ‘화신상회’를 설립하고, 이후 ‘화신백화점’으로 확장했다. “조선인 손으로 세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홍보했지만, 실제 자본 구조는 일본계 금융기관(조선식산은행, 일본상공은행 등) 의 융자를 통해 성장했다. 상품 유통망 또한 일본 상공 네트워크에 의존했고, 일본 제품 판매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2. 전시체제 협력과 군수산업 진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박흥식은 ‘국방헌금 모금 운동’에 참여하고, “황국신민으로서 성전을 돕자”는 광고를 전국 일간지에 게재했다. 1940년대에는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조선비행기공업 주식회사를 설립, 일본 육군용 비행기 부품 생산에 참여했다. 그는 이 회사를 ‘조선인의 자주 산업’이라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일본 미쓰비시·나카지마 항공기의 하청 공장이었다. 이 사업으로 박흥식은 막대한 전시 이익을 얻었고, 일제 말기엔 경성에서 손꼽히는 10대 재벌 반열에 올랐다.
3. 조선총독부 기관 및 친일단체 가입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임전보국단, 애국기헌금회 등에 가입, 전쟁 승리를 위한 자금 조달에 참여했다. 1943년에는 “조선인 기업가는 황국신민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연설하며, 조선 청년들의 근로보국대 참여를 독려했다.
③ 해방 이후의 아이러니 — 반민특위 제1호 체포자
해방 후 그는 반민족행위처벌법 제1호 검거 대상자로 체포되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경제적 협력이었을 뿐 정치적 매국은 아니다”라는 논리로 증거불충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이후 사업을 재개해 제지·건축·제약업으로 확장하며, 다시 “경제부흥의 주역”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친일 부역으로 쌓은 부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자산으로 승계된 셈이다.
④ 근대사적 의의
박흥식의 생애는 ‘경제와 도덕이 분리된 근대화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는 “조선의 기업가 정신”을 내세웠지만, 그가 세운 화신백화점의 매출은 전쟁의 군수품, 제국 상품, 조선인의 피로 이루어졌다. 그의 기업은 일제의 식민경제 구조 속에서 ‘조선인의 부’를 일본 제국으로 흡수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했다.
⑤ 오늘의 시사점
박흥식의 삶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사라진 시대에 돈으로 성공한 사람은 과연 누굴 위해 부자가 된 것인가?”
그는 개인의 성공으로는 존경받을 만했지만, 그 성공의 뿌리가 식민 체제의 협력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기업 구조, 정치와 자본이 결탁해 도덕을 밀어내는 형태는 해방 후에도 한국 사회에 그대로 이어졌다.
⑥ 다온의 한줄 정리
“그는 부를 쌓았지만, 그 부는 조국의 상처 위에 세워졌다.”
⑦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화신백화점의 자본 구조 분석》, 이형석, 2016
《한때 한국 최고 부자, 백화점 사장의 용서 못할 과거》, 오마이뉴스, 2021
《친일 재벌의 생성과 해방 이후의 부활》, 김종태, 2019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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