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의병장4 제6편 — 안중근 - 피로 맹세하고, 정의로 쏘다 ① 인물 개요1879년(고종 1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安重根)은 무기를 들기 전, 먼저 교과서를 들었던 사람이다. 그의 독립운동은 총보다 붓에서, 복수보다 교육에서 시작되었다. “나라의 기운은 글에서 일어난다.”그는 백성의 눈을 깨워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훗날 총성과 평화론으로 이어졌다.② 교육으로 시작된 독립 — 삼흥학교와 돈의학교1906년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학교(三興學校) 를 세웠다. ‘나라의 흥, 교육의 흥, 도의의 흥’ 세 가지를 일으킨다는 뜻이었다. 그는 직접 교사로 나서 아이들에게 국문·산술·체조·윤리를 가르쳤다. 이듬해에는 황해도 안악군에 돈의학교(敦義學校) 를 세웠다. ‘의(義)를 돈독히 한다’는 뜻처럼 가난한 농민 자녀에게 글과 실용기술을 무료로 가르쳤다... 2025. 10. 31. 제5편 민종식 — 왕의 밀지를 품은 충절의 칼 ① 인물 개요민종식(閔宗植, 1861~1921)은 조선 말기 충청 의병운동을 대표한 인물이다. 그는 벼슬길의 부귀보다 ‘도리’를 택한 선비였고, 나라가 기울자 붓을 던지고 칼을 든 사람이었다. “벼슬로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면, 피로라도 지켜야 한다.”그의 생애는 권력의 길이 아니라 양심의 길, 그리고 한 사람의 충신이 나라의 주춧돌이 되려 한 이야기였다.② 고종의 밀지 — 황제의 뜻을 받은 의병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정은 이미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몇몇 충신에게 비밀 밀지(密旨)를 내려 “의병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라”고 명했다. 민종식은 바로 그 밀지를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공주의 옛 관찰사로서 지방 사정을 꿰뚫고 있었고, 그 명을 받들어 충청.. 2025. 10. 31. 제3편 신돌석—민초의 칼로 나라를 지킨 의병장 ① 인물 개요1900년대 초, 조선의 하늘은 이미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경북 영덕의 한 농촌에서 양반의 피를 타고났으나 평민의 옷을 입고 세상을 일으킨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돌석(申乭石, 1878~1908).본관은 평산(平山),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이었다. 조부 때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 신성구는 농사와 잡역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신돌석은 어릴 적부터 밭을 갈며 무예를 익혔다. 혈통상으로는 양반이었지만, 현실의 삶은 완전한 평민이었다. 그는 서당 대신 들판에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배우며 자랐고, 그 속에서 **‘신분보다 인간이 먼저다’**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 외쳤다. “나라를 잃으면 백성도 없다. 우리가 스스로.. 2025. 10. 30. 기억의 자리 - 국혼(國魂)을 부르다 총칼보다 단단한 건 꺼지지 않는 마음이었다.누군가는 붓으로,누군가는 칼로,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 혼을 지켰다.나라가 사라져도,그 마음이 꺼지지 않았다면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그 마음의 이름, 국혼(國魂).이곳은 그 혼을 다시 불러내는 자리이자,잊히지 않기 위해 우리가 다시 쓰는 기록이다.💙 by 다온아라 2025. 10. 29.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