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친일파22

제9편 고영희 — 조약의 펜 끝, 나라의 살림을 넘긴 실무형 배신자 ① 인물 개요고영희(高永喜, 한성부 출생)는 역관(譯官) 고진종의 가문에서 태어난 관료로, 개화기 이후 내무·학부·탁지·법부 등 핵심 부처의 실무를 두루 거친 행정가형 인물이었다. 명민하고 꼼꼼한 행정가로 평가받았지만, 그 재능은 국가를 살리는 데가 아니라 식민 권력을 위해 쓰였다.② 주요 행적1890년대 후반부터 내무·학부(교육)·탁지(재정)·법부(사법) 요직을 전전하며, 조선 행정의 실무를 장악. 1907년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당시, 이완용 내각의 학부·탁지 수장으로 참여. 일본 통감부가 요구한 재정 고문제와 예산 통제 체제를 실무로 설계·집행. 조선의 세입·세출, 차관 운용이 통감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도록 바꾸는 역할 수행. 고종의 강제 퇴위 및 군대 해산 조치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묵묵히.. 2025. 11. 3.
제8편 조중응 — 이성으로 배신을 설계한 냉정한 법의 얼굴 ① 인물 개요조중응(趙重應, 1856~1919). 한성부 출신의 양주 조씨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식견으로 이름을 얻었다.그러나 그 지식은 조국의 자주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는 ‘북방남개론(北防南開論)’ 을 주장하며 외세의 침탈을 ‘조선의 생존전략’으로 포장했다. 그때 그는 몰랐을까. 지식이 조국을 구하는 칼이 될 수도, 조국을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② 주요 행적1890년대 후반, 조중응은 법부 형사국장, 외부 교섭국장 등을 지내며 정계의 중심에 섰다. 1893년 서북변계 조사위원으로 러시아와 만주 지역을 시찰한 뒤, “조선은 러시아를 막고 일본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훗날 그의 배신을 정당화하는 사상의 씨앗.. 2025. 10. 31.
제7편 임선준 — 조용히 서명한 관료, 조국의 숨을 멈추게 하다 ① 인물 개요임선준(林善準, 1851~1910)은 한성부 출신으로, 충청북도 진천을 본관으로 한 진천 임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리로 진출하던 명문 사대부 가문으로, 조선 후기의 중앙 관료층에 속한 ‘안정된 권세 가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과 공부에 능했고, 1885년(고종 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수찬, 승정원 주서, 그리고 시종원 좌시종 등 왕실 근처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온화하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신중함은 결국 침묵으로 공모한 배신의 형태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임선준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학부대신, 내부대신 등 요직을 거치며 조선 후기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1907년,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며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을.. 2025. 10. 31.
제6편 이병무 — 권력을 지탱한 충성, 조국을 팔아넘긴 이름 ① 인물 개요이병무(1852~1926)는 조선 후기 무반 가문 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겉으론 왕실에 충성하는 인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대의 권력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이름은 충성의 탈을 쓴 배신, 권력의 안락함에 길든 관료의 상징으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이병무는 1900년 일본과의 유착으로 구금되었으나, 곧 석방된 뒤 친일 세력과 결탁해 세력을 확장했다. 1907년 정미7적 중 한 사람으로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앞장서며, 조선의 무장 독립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는 일본의 보호를 받는 체제가 조선의 ‘안정’이라고 믿었고, 결국 그 안정은 식민지의 서막이 되었다.③ 근대사적 의의이병무는 ‘왕실의 충신’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왕조 체제의 잔불에 기대어.. 2025. 10. 31.
제5편 권중현 — 성웅의 피로 권세를 씻은 자 ① 인물 개요권중현(1854~1934)은 충청북도 영동 출신으로, 조선 명문 무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권율 장군의 9대손, 모친은 이순신 장군의 9대손으로, 두 ‘성웅(聖雄)’의 충절이 한 혈통에 모인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피를 따라가지 못했다. 음서(蔭敍), 즉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에 나서는 제도로 관직에 진출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가문의 이름으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삶은 충의의 혈통이 권세의 욕망으로 변질된 한 예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권중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오늘날의 외교부 장관 격)으로서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서명자, 즉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서명은 국권 상실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고, 조선의 자주권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더 .. 2025. 10. 31.
제4편 이지용 — 왕족의 이름으로 나라를 팔고, 스스로를 변명한 자 ① 인물 개요이지용(李址鎔, 1854~1926)은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의 17대손으로, 전주 이씨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형 흥녕군의 양자로 입적되어 실질적인 왕족 신분을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조정의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젊은 시절부터 도박과 향락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으며, 왕족이라는 이름으로 방종을 일삼았다. 그러나 신분이 주는 특권은 그를 끝내 권력의 중심으로 이끌었다.② 주요 행적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 그는 일본 측의 회유를 받고 1만 엔의 대가로 서명했다. 그의 펜 끝에서 조선의 외교권이 팔려나갔고, 그 순간부터 그는 권력의 길 위에 완전히 일본의 그림자가 되었다. 1년 뒤인 1905년, 그는 내부대신으로서 을사늑약에 서명하며 을사오적 중 한 명이 .. 2025. 10. 3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