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친일파32 제27편 김연수 — 민족자본의 이름으로 제국의 경제를 세운 남자 ① 인물 개요김연수(金連洙, 1896~1979)는 삼양그룹 창립자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의 대표적인 재벌이었다. 그는 표면적으로 ‘민족자본가’라 불렸지만, 실상은 일본 제국의 식민경제 질서 속에서 성장한 합리적 친일 엘리트였다. 해방 이후에는 반민특위의 처벌을 피하고, 산업화의 주역으로 재평가받으며 훈장까지 받은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도덕이 밀리고 실용이 앞선 시대, 즉 ‘배신이 성공으로 보상된 근대’의 전형이었다.② 주요 활동과 친일 행적1. 조선 자본가의 외피를 쓴 제국의 협력자도쿄 와세다대학에서 상학을 전공한 그는 귀국 후 형 김성수와 함께 경성방직 주식회사를 세우고, 이후 삼양사·삼양제당·동아일보·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그는 ‘조선인 자본’의 상징으로 포장됐지만, 경성방직의.. 2026. 3. 1. 제26편 박흥식 — 부의 제국을 세운 남자, 식민의 돈으로 성장한 재벌 ① 인물 개요박흥식(朴興植, 1903~1994)은 조선의 첫 근대 백화점 ‘화신백화점’의 설립자이자, 일제강점기 경제형 친일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그는 언뜻 보기엔 근대 자본가, 성공한 사업가로 보이지만 그의 부는 일본 제국의 군수산업과 소비체제 위에서 만들어졌다. 조선의 자본이 아니라 제국의 자본에 기대어 성장한 남자.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돈으로 권력을 산 친일 재벌’의 상징으로 남았다.② 주요 활동과 친일 행적1. 자수성가의 신화, 그러나 제국의 시장 안에서평안남도 용강 출신인 그는 1926년 상경해 인쇄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1931년 경성 종로에 ‘화신상회’를 설립하고, 이후 ‘화신백화점’으로 확장했다. “조선인 손으로 세운 최초의 백화점”으로 홍보했지만, 실제 자본 구조는 일본계 .. 2026. 2. 28. 제25편 김활란 — 여성 교육의 전사인가, 체제의 협력자인가 ① 인물 개요김활란(金活蘭, 1899-1970)은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개척자이자, 동시에 일제강점기 전시체제에 협력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학감·교장을 지내며 수많은 여성 지식인을 길러냈지만,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제국에 협력한 기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김활란은 인천 출생으로, 1918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미국 웨슬리언대학과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전 교수로 부임해 여성교육과 기독교 신앙을 결합한 교육을 추진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그녀의 행보는 달라졌다. 그녀는 애국금차회 발기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애국자녀단 조직 지도자로 참여하여 조선 여성과 학생들을 전시체제에 .. 2025. 12. 31. 제23편 최남선 — 민족의 펜을 들고 일어섰던 천재, 제국의 논리로 무너진 지식인 ① 인물 개요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시인이자 사학자, 언론인, 교육자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대표적 변절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지식의 빛으로 민족을 일으켰던 그가, 결국 지식의 논리로 민족을 억눌렀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근대 조선 지식인의 가장 복합적 비극이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남선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학문을 배우고, 귀국 후 소년(少年) 잡지를 창간하여 근대적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은 민족의 각성과 청년의 진취를 상징했다. 1919년 그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참여했고, 옥고를 치르며 지식인의 양심으로 존경받.. 2025. 12. 22. 제22편 이인직 — 펜으로 나라를 팔고,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글을 쓴 사나이 ① 인물 개요이인직(李人稙, 1862~1916)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언론인·소설가·관료·정치가로 활동했던 대표적 친일 지식인이다. 그는 신문과 문학이라는 근대의 언어를 누구보다 빨리 익혔지만, 결국 그 언어를 제국의 논리를 전파하는 도구로 바꾸었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학문을 배우고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개화파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점차 일본 제국의 세력에 기대어 이완용의 비서 겸 정치적 후원자 관계로 들어가며 친일 노선을 뚜렷이 드러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이인직은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학문에 관심을 보였다. 1880년대 일본에 유학하여 근대 정치와 신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 후에는 독립신문, 제국신문.. 2025. 12. 5. 제21편 민영휘 —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버린 귀족 ① 인물 개요영휘(閔泳徽, 1852~1935)는 조선 후기의 고위 관료이자, 한일병합 이후 조선귀족으로 작위를 받은 대표적인 친일 상류층 인물이다. 그는 명성황후 민씨와 같은 여흥 민씨 일가의 방계, 즉 황실 인척 세력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 재정과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고종의 처남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명성황후의 먼 친척에 해당한다. 조선의 몰락기, 그는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결국 일본 제국의 품으로 들어갔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민영휘는 19세기 말, 명문 여흥 민씨 가문의 권세를 배경으로 내무대신·탁지부대신 등 요직을 맡아 대한제국의 재정 운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국고가 기울고 정치적 신뢰가 흔들리자, 그는 황실 재정을 사유화하고 일본 측과의 재정 거래로 막대한 사재를 축적했다. 19.. 2025. 11. 26. 이전 1 2 3 4 5 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