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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22

제16편 윤시병 — 이름 없는 일진회 간부, 그러나 분명한 매국의 발자취 ① 인물 개요윤시병(尹始炳, 생몰년 미상)은 대한제국 말기의 관리이자 일진회 간부로 활동한 인물이다. 을사늑약 체결에 직접 서명한 ‘을사오적’은 아니었으나, 그 이후 일본의 보호정책을 옹호하고 합방 찬성 여론을 퍼뜨린 실무 세력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경상도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관직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 민심을 동원해 일진회의 조직 확장에 앞장섰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시병은 본래 개화적 사상을 표방하며 근대 교육과 산업 진흥을 주장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며 점차 일본 중심의 근대화론으로 기울었다. 그는 1904년 송병준·이용구 등이 주도한 일진회에 합류하여 지방 조직 운영과 회원 모집을 담당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그는 “조선이 일본의 문명을 받아야 살아남는다”는.. 2025. 11. 18.
제15편 이용구 — 개화의 이름으로 민족을 저버린 자 ① 인물 개요이용구(李容九, 1868~1912)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동학(東學) 에 심취하며 평등과 자강의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다. 그는 한때 농민과 백성의 삶을 구제하고 조선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뜻을 지녔지만, 시대의 격랑 속에서 그 이상은 왜곡되고 만다. 동학 내부에서 그는 개화와 문명화를 주장했으나, 이후 일본 세력의 근대화를 찬양하면서 “외세 의존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결국 그는 동학에서 제명당했고, 이 사건은 훗날 손병희가 천도교로 조직을 개편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동학에서 축출된 뒤 이용구는 “일본의 문명과 제도를 배워야 조선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따라1904년 송병준과 함께 일진회(一進會) 를 창립했다. 일진회는 표면적으로는 자강과.. 2025. 11. 14.
제13편 민병석 — 권력의 향기 속에서 의혹을 남긴 대신 ① 인물 개요민병석(閔丙奭, 1858~1940)은 여흥 민씨 출신으로,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보호하며 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문과에 급제한 뒤 내무대신·법부대신·의정부참정대신 등을 지내며 조선 말기 핵심 권력층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출세는 능력보다 인맥에 기대어 쌓은 권력의 탑이었다. 명성황후 사후에는 이완용 집안과 혼맥으로 이어지며, 조선의 2대 친일 귀족으로 불릴 만한 기반을 굳혔다.② 주요 행적민병석은 고종의 신임을 등에 업고 조선의 중심으로 올라섰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권력의 중심, 일본의 그림자를 향했다.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당시부터 일본 측과 긴밀히 교류하며 친일 내각의 핵심 인물로 자리했고, 190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에 초청하는 데 깊이 관여했다. 그의 이름은 그때부터.. 2025. 11. 10.
제12편 조민희 — 충절의 집안에서 태어나, 배신의 이름으로 죽다 ① 인물 개요조민희(趙民熙, 1857~1939)는 양주 조씨, 조선 명문가 출신으로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충신 조병세의 7촌 조카다. 또한 그는 이완용의 처남으로, 권세와 혈연의 양쪽 고리에 얽혀 조선 말기의 권력 중심에 섰다. 한때 고종의 신임을 받아 내부대신, 법부대신, 탁지부대신 등을 지내며 정계의 핵심에 올랐지만, 1910년 경술국치 조약 체결에 적극 협조해 자작 작위와 은사금을 받고 일본 제국의 조선귀족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충절의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의 유혹 앞에 스스로 명예를 버렸다.② 주요 행적조선 말기 내각의 중추 인물로 고종의 신임을 받음. 을사늑약 체결 당시 침묵으로 일제의 강압을 사실상 묵인. 1910년 경술국치 체결에 협조하며 조선귀족(자작 작위)으로 임명. 일제 강점기.. 2025. 11. 8.
제11편 송병준 — 변절의 설계자, 일진회의 얼굴 ① 인물 개요송병준(宋炳濬, 1858~1925)은 함경남도 장진 출신으로 본관은 은진이다. 부친은 율학훈도 송문수이며, 어린 시절 서얼 신분의 차별을 받았으나 재능과 야심으로 관직에 올랐다. 1871년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참군, 사헌부 감찰 등을 역임했고,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구로다 기요타카 일행을 접대하면서 일본 세력과 인연을 맺었다. 이때부터 송병준의 인생은 조선이 아닌 일본을 향하게 된다.② 주요 행적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치며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긴 그는 1886년 일본에서 김옥균 암살 밀명을 받았다. 그러나 실행 대신 김옥균과 가까워져 귀국 후 통모 혐의로 투옥, 민영환의 주선으로 석방되었다. 이 사건 이후 송병준은 방향을 완전히 틀어 일본으로 향했다. 1895년 무렵 일본으로 망.. 2025. 11. 6.
제10편 이재곤 — 법으로 조국을 판 황족 ① 인물 개요이재곤(李載崑, ?~1911)은 조선 왕실의 직계 종친으로, 영조의 손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隱信君)의 양자이며, 남연군 이구와 군부인 여흥 민씨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즉, 고종과 같은 항렬의 황실 인물로, 왕실의 피를 이은 인물이었다. 나라를 지켜야 할 책임이 가장 무거웠던 그가, 결국 조선의 법과 왕실의 명예를 팔아 넘긴 첫 황족이 되었다.② 주요 행적이재곤은 대한제국 시절 법부대신으로 재임하며, 1907년 일본이 강요한 정미7조약 체결에 참여해 정미칠적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이 조약을 통해 조선의 군사권과 사법권을 일본에 넘겨주는 데 앞장섰고, 이는 대한제국이 스스로의 법으로 자멸하는 결과를 낳았다. 1910년 경술국치 당시에도 합병에 찬성해 일본 제국으로부터 남작..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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