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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24

제25편 김활란 — 여성 교육의 전사인가, 체제의 협력자인가 ① 인물 개요김활란(金活蘭, 1899-1970)은 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개척자이자, 동시에 일제강점기 전시체제에 협력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학감·교장을 지내며 수많은 여성 지식인을 길러냈지만,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제국에 협력한 기록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김활란은 인천 출생으로, 1918년 이화학당을 졸업한 뒤 미국 웨슬리언대학과 보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여전 교수로 부임해 여성교육과 기독교 신앙을 결합한 교육을 추진했다. 그러나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그녀의 행보는 달라졌다. 그녀는 애국금차회 발기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애국자녀단 조직 지도자로 참여하여 조선 여성과 학생들을 전시체제에 .. 2025. 12. 31.
제23편 최남선 — 민족의 펜을 들고 일어섰던 천재, 제국의 논리로 무너진 지식인 ① 인물 개요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시인이자 사학자, 언론인, 교육자였다. 그는 청년 시절에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이름을 남겼지만, 말년에는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대표적 변절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지식의 빛으로 민족을 일으켰던 그가, 결국 지식의 논리로 민족을 억눌렀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근대 조선 지식인의 가장 복합적 비극이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8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남선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학문을 배우고, 귀국 후 소년(少年) 잡지를 창간하여 근대적 계몽운동을 이끌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은 민족의 각성과 청년의 진취를 상징했다. 1919년 그는 3·1운동 독립선언서 초안 작성자로 참여했고, 옥고를 치르며 지식인의 양심으로 존경받.. 2025. 12. 22.
제22편 이인직 — 펜으로 나라를 팔고,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글을 쓴 사나이 ① 인물 개요이인직(李人稙, 1862~1916)은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격동기에 언론인·소설가·관료·정치가로 활동했던 대표적 친일 지식인이다. 그는 신문과 문학이라는 근대의 언어를 누구보다 빨리 익혔지만, 결국 그 언어를 제국의 논리를 전파하는 도구로 바꾸었다.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일본 유학을 통해 근대 학문을 배우고 돌아왔다. 귀국 후에는 ‘개화파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점차 일본 제국의 세력에 기대어 이완용의 비서 겸 정치적 후원자 관계로 들어가며 친일 노선을 뚜렷이 드러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이인직은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신학문에 관심을 보였다. 1880년대 일본에 유학하여 근대 정치와 신문학을 공부한 뒤, 귀국 후에는 독립신문, 제국신문.. 2025. 12. 5.
제21편 민영휘 — 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라를 버린 귀족 ① 인물 개요영휘(閔泳徽, 1852~1935)는 조선 후기의 고위 관료이자, 한일병합 이후 조선귀족으로 작위를 받은 대표적인 친일 상류층 인물이다. 그는 명성황후 민씨와 같은 여흥 민씨 일가의 방계, 즉 황실 인척 세력의 일원으로 조선 후기 재정과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고종의 처남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명성황후의 먼 친척에 해당한다. 조선의 몰락기, 그는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결국 일본 제국의 품으로 들어갔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민영휘는 19세기 말, 명문 여흥 민씨 가문의 권세를 배경으로 내무대신·탁지부대신 등 요직을 맡아 대한제국의 재정 운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국고가 기울고 정치적 신뢰가 흔들리자, 그는 황실 재정을 사유화하고 일본 측과의 재정 거래로 막대한 사재를 축적했다. 19.. 2025. 11. 26.
제20편 송종헌 — 세습된 그림자 ① 인물 개요송종헌(1894~1949)은 한일병합을 주도한 송병준의 장남으로, 부친이 후작으로 책봉되자 아무런 공적 없이 자작(子爵) 작위를 세습했다. 그는 조선 귀족제의 2세대이자, ‘매국의 세습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나라를 팔아 권세를 얻었다면, 아들은 그 대가로 귀족의 특권을 누리며 식민 권력의 충실한 협력자로 살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910년 한일병합 직후, 부친 송병준이 후작으로 승작되자 자작 작위를 세습.1911년 이후, 조선귀족회 회원으로 등록되어 일본 귀족들과 교류하며 은사금과 귀족연금을 수령.1933년, 일제 식민통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일본의 식민 행정을 정당화하는 데 협력.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임전보국단·조선유도연합회 등 전시 협.. 2025. 11. 24.
제19편 윤갑병 — 권력의 충성으로 민족을 팔아 넘긴 관리 ① 인물 개요윤갑병(尹甲炳, 1863~1943)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료와 정치 실무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개화에 호의적인 지방 엘리트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진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노선으로 전향했다.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며 강원도지사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다. 그는 명분보다 권력을 택했고, 결국 일본 제국의 충실한 하급 파트너로 남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갑병은 파평 윤씨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서북 지역에서 교육과 행정 실무에 종사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도우며 일본 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일본의 세력이 조선을 지배할 것을 확신했고, 결국 1904년 이용구·송병.. 2025.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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