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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 시리즈47

제20편 송종헌 — 세습된 그림자 ① 인물 개요송종헌(1894~1949)은 한일병합을 주도한 송병준의 장남으로, 부친이 후작으로 책봉되자 아무런 공적 없이 자작(子爵) 작위를 세습했다. 그는 조선 귀족제의 2세대이자, ‘매국의 세습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나라를 팔아 권세를 얻었다면, 아들은 그 대가로 귀족의 특권을 누리며 식민 권력의 충실한 협력자로 살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1910년 한일병합 직후, 부친 송병준이 후작으로 승작되자 자작 작위를 세습.1911년 이후, 조선귀족회 회원으로 등록되어 일본 귀족들과 교류하며 은사금과 귀족연금을 수령.1933년, 일제 식민통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어 일본의 식민 행정을 정당화하는 데 협력.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임전보국단·조선유도연합회 등 전시 협.. 2025. 11. 24.
제19편 윤갑병 — 권력의 충성으로 민족을 팔아 넘긴 관리 ① 인물 개요윤갑병(尹甲炳, 1863~1943)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관료와 정치 실무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개화에 호의적인 지방 엘리트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진회에 참여하면서 친일 노선으로 전향했다.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하며 강원도지사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다. 그는 명분보다 권력을 택했고, 결국 일본 제국의 충실한 하급 파트너로 남았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윤갑병은 파평 윤씨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서북 지역에서 교육과 행정 실무에 종사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도우며 일본 측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일본의 세력이 조선을 지배할 것을 확신했고, 결국 1904년 이용구·송병.. 2025. 11. 23.
제18편 정운복 — 배움으로 시작해, 배신으로 끝난 개화 지식인 ① 인물 개요정운복(鄭雲復, 1870~1920)은 황해도 평산 출신의 개화파 지식인으로, 근대 교육과 문명 사상을 내세웠으나 결국 일제에 협력하며 한일병합을 지지한 인물이다. 젊은 시절에는 해외 유학을 통해 서구 문물을 배우고 조선의 근대화를 꿈꿨지만, 그 꿈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일본 의존형 개화론’으로 변질되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정운복은 1870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며 근대 문명과 자유주의 사상을 접했다. 그는 귀국 후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1899년 귀국 후 개화운동에 참여했지만, 그의 개혁은 점차 친일적 실용주의로 기울어갔다. 그는 대한제국 말기 흑산도로 유배되기도 했으며, 이 시기를 지나며 “조선의 근대는 일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굳어졌다.. 2025. 11. 22.
제19편 지청천 — 제국의 군복을 벗고 조국의 군복을 입다 ① 인물 개요지청천(池靑天, 1888~1957) 본명은 지석규(池錫奎). 서울 출신의 양반가 자제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무예에 능했으며,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던 청년이었다. 1905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 그는 1907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1909년 무관학교마저 폐교되며 꿈이 좌절됐다. 그는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뜻 하나로, “적을 알아야 조국을 지킨다”는 심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육군사관학교(23기) 에 입학했다. 그 선택은 변절이 아니라 생존의 길이자 배움의 길이었다. 하지만 일본군 장교가 된 뒤, 그는 자신이 섬기는 군대가 조국을 억압하는 제국의 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내가 들고 있는 총구가, 내 조국을 향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이 그의 .. 2025. 11. 21.
제18편 홍범도 — 봉오동의 포수 장군, 이국의 영혼 ① 인물 개요홍범도(洪範圖, 1868~1943)는 평안남도 평원 출신으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글을 배우지 못했지만, 젊은 시절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스님들을 도우며 한글과 한문을 익혔다. 그곳에서 세상의 도리를 배우고, 조선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잠시 불가에 몸을 의탁했지만 마음은 늘 백성의 삶에 있었다. 비구니와 운명적 사랑을 이루었으나 환속을 하는 과정에서 건달패의 습격을 받아 아내와 생이별했고, 그 일은 상처로 남았다. 그는 세상에 홀로 남아 밑천을 털어 총 한 자루를 사들였고, 포수로서 산을 오르내리며 사격술을 익혔다. 그 손끝의 정확함은 훗날 독립전쟁의 운명을 바꿀 한 발이 된다.② 의병의 시작 — 총을 든 백성1895년 명성황후 시해 소식이 퍼지자, 홍범.. 2025. 11. 20.
제17편 김좌진 — 청산리의 백야, 독립군의 영혼 ① 인물 개요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충남 홍성 갈산면 행산리 출신으로, 지역의 유력한 지주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세 살 무렵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쏘기·말타기에 능했다고 전해진다.② 양반의 자각 - 노비 해방과 호명학교 설립17세의 김좌진은 가문의 노비를 모두 해방시키고 자택 일부를 개조해 호명학교(浩明學校)를 세웠다. ‘호명(浩明)’은 ‘크게 세상을 밝힌다’는 뜻으로, 무력보다 배움으로 나라를 세우겠다는 그의 신념이 담긴 이름이었다. 이 학교는 근대식 민족교육의 시초로 평가되며, 훗날 홍성 일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다.③ 투옥과 망명 — 의병에서 군인으로1911년, 김좌진은 서간도 독립운동기지 건설 운동을 추진하다 사촌의 밀고로 일경에 체포되어.. 2025.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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