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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 시리즈64

제7편 임선준 — 조용히 서명한 관료, 조국의 숨을 멈추게 하다 ① 인물 개요임선준(林善準, 1851~1910)은 한성부 출신으로, 충청북도 진천을 본관으로 한 진천 임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리로 진출하던 명문 사대부 가문으로, 조선 후기의 중앙 관료층에 속한 ‘안정된 권세 가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과 공부에 능했고, 1885년(고종 22년)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수찬, 승정원 주서, 그리고 시종원 좌시종 등 왕실 근처의 요직을 두루 맡았다. 온화하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신중함은 결국 침묵으로 공모한 배신의 형태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임선준은 고종의 신임을 받아 학부대신, 내부대신 등 요직을 거치며 조선 후기 정치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1907년, 일본이 고종의 퇴위를 강요하며 정미7조약(한일신협약) 을.. 2025. 10. 31.
제7편 조마리아 - 민족의 신념을 세운 어머니 ① 인물 개요1860년 황해도 해주의 깊은 신앙심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조마리아는 안중근의 어머니이자, 조선의 어머니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나라를 잃은 시대 속에서 한 어머니의 믿음이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가를 증명했다. 그녀의 신앙은 단단했고, 그 믿음은 아들을 ‘정의의 사람’으로 길러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마리아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눈물 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하늘이여, 내 아들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그녀는 신앙으로 아들의 길을 받아들였다.② 옥중 편지 — 어머니의 기도💌 다음은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옥중편지의 주요 내용이다. “네가 나라를 위하여 그 일을 하였다 하니 어미로.. 2025. 10. 31.
제6편 이병무 — 권력을 지탱한 충성, 조국을 팔아넘긴 이름 ① 인물 개요이병무(1852~1926)는 조선 후기 무반 가문 출신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겉으론 왕실에 충성하는 인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시대의 권력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 현실주의자였다. 그의 이름은 충성의 탈을 쓴 배신, 권력의 안락함에 길든 관료의 상징으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이병무는 1900년 일본과의 유착으로 구금되었으나, 곧 석방된 뒤 친일 세력과 결탁해 세력을 확장했다. 1907년 정미7적 중 한 사람으로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앞장서며, 조선의 무장 독립 기반을 무너뜨렸다. 그는 일본의 보호를 받는 체제가 조선의 ‘안정’이라고 믿었고, 결국 그 안정은 식민지의 서막이 되었다.③ 근대사적 의의이병무는 ‘왕실의 충신’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왕조 체제의 잔불에 기대어.. 2025. 10. 31.
제6편 — 안중근 - 피로 맹세하고, 정의로 쏘다 ① 인물 개요1879년(고종 1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安重根)은 무기를 들기 전, 먼저 교과서를 들었던 사람이다. 그의 독립운동은 총보다 붓에서, 복수보다 교육에서 시작되었다. “나라의 기운은 글에서 일어난다.”그는 백성의 눈을 깨워야 나라가 산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훗날 총성과 평화론으로 이어졌다.② 교육으로 시작된 독립 — 삼흥학교와 돈의학교1906년 평안남도 진남포에 삼흥학교(三興學校) 를 세웠다. ‘나라의 흥, 교육의 흥, 도의의 흥’ 세 가지를 일으킨다는 뜻이었다. 그는 직접 교사로 나서 아이들에게 국문·산술·체조·윤리를 가르쳤다. 이듬해에는 황해도 안악군에 돈의학교(敦義學校) 를 세웠다. ‘의(義)를 돈독히 한다’는 뜻처럼 가난한 농민 자녀에게 글과 실용기술을 무료로 가르쳤다... 2025. 10. 31.
제5편 권중현 — 성웅의 피로 권세를 씻은 자 ① 인물 개요권중현(1854~1934)은 충청북도 영동 출신으로, 조선 명문 무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권율 장군의 9대손, 모친은 이순신 장군의 9대손으로, 두 ‘성웅(聖雄)’의 충절이 한 혈통에 모인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피를 따라가지 못했다. 음서(蔭敍), 즉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에 나서는 제도로 관직에 진출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가문의 이름으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삶은 충의의 혈통이 권세의 욕망으로 변질된 한 예로 남았다.② 주요 행적권중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오늘날의 외교부 장관 격)으로서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서명자, 즉 ‘을사오적’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서명은 국권 상실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고, 조선의 자주권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더 .. 2025. 10. 31.
제5편 민종식 — 왕의 밀지를 품은 충절의 칼 ① 인물 개요민종식(閔宗植, 1861~1921)은 조선 말기 충청 의병운동을 대표한 인물이다. 그는 벼슬길의 부귀보다 ‘도리’를 택한 선비였고, 나라가 기울자 붓을 던지고 칼을 든 사람이었다. “벼슬로 나라를 구할 수 없다면, 피로라도 지켜야 한다.”그의 생애는 권력의 길이 아니라 양심의 길, 그리고 한 사람의 충신이 나라의 주춧돌이 되려 한 이야기였다.② 고종의 밀지 — 황제의 뜻을 받은 의병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조정은 이미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몇몇 충신에게 비밀 밀지(密旨)를 내려 “의병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라”고 명했다. 민종식은 바로 그 밀지를 받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공주의 옛 관찰사로서 지방 사정을 꿰뚫고 있었고, 그 명을 받들어 충청..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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