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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팔은 자

제14편 민영기 — 몰락한 왕가의 그늘 아래서 권력에 기생한 자

by daonara 2025.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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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적 - AI 생성 이미지

인물 개요

민영기(閔泳綺, 1861~1936)는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관료로, 명성황후 민씨 가문과 인척 관계를 가진 인물이다. 완성군 이희의 외손자로 알려졌으며, 방계이긴 하지만 왕실과 연결된 인맥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쌓았다. 무과에 급제하여 군직을 지냈으며, 정치 격변기 속에서 현실적 선택을 통해 권력 주변에 자리 잡았다.

 주요 활동 및 사상

민영기는 근왕 성향의 무인이었으나, 갑신정변 이후 정국의 불안 속에서 현실적 노선을 택했다. 1900년대에 들어 일본이 조선을 사실상 지배하자 그는 권력의 향방을 읽고 점차 친일적 태도를 드러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로 임명되어 식민지 경영에 적극 참여했다. 이 회사는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탈하기 위한 기관으로, 민영기는 그 구조 속에서 개인의 지위와 안락을 유지했다. 그의 행보는 충성이나 사상보다 생존과 안위 중심의 처세형 인물을 보여준다.

 근대사적 의의

민영기는 왕실 인척 출신 기득권층이 일제에 협력하며 생존한 전형적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조선의 몰락 과정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지키는 데 집중했으며, 그 결과 조선의 주권 상실에 일조한 친일 관료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삶은 영웅도 반역자도 아닌, 권력 주변의 현실주의자로서 대사의 그늘을 상징한다. 화려한 명분 대신,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무력한 생존의 초상이었다.

 오늘의 시사점

민영기의 생애는 권력의 변동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는 시대에 순응하며 살아남았지만, 그 생존은 민족적 존엄을 잃은 공허한 삶이었다. 자신은 현실을 이겨냈다고 믿었겠지만, 역사는 그를 냉정하게 판단했다. 오늘날에도 부와 안정을 위해 정의를 저버리는 모습은 형태만 바뀌어 여전히 반복된다. 민영기의 이름은살아남는 것바르게 사는 것의 차이를 되묻게 한다.

⑤ 다온의 한줄 정리

“그는 승리했다고 믿었지만, 역사는 그를 패자로 남겼다.”

⑥ 출처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왕조실록》 및 대한제국기 관보 기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s://db.history.go.kr)

네이버 지식백과 「민영기」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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