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인물 개요
곽낙원(郭洛元, 1859~1939)은 백범 김구의 어머니이자,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숭고한 어머니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녀는 한 아들의 어머니를 넘어, 임시정부의 어머니로서 수많은 청년들의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김구의 독립운동이 불꽃이라면, 곽낙원의 삶은 그 불꽃을 지핀 등불이었다.
② 청년 김구를 키운 손
곽낙원은 가난했으나 단정하고 강직한 여인이었다. 치하포 사건으로 김구가 탈옥하자, 그녀는 아들의 죄를 대신해 옥살이를 했다. 그 고초 속에서 남편이 옥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원망 대신 “아들이 옳은 일을 했다면 그 길을 막지 말라.”며 담담히 감내했다. 그녀의 용서는 체념이 아니라 신념의 언어였다.
③ 신앙으로 세운 신념
곽낙원은 한학과 유교적 예절 속에 자랐지만, 후일 기독교를 받아들여 신앙으로 아들을 세웠다. 그녀의 기도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양심’에 대한 다짐이었다. 그 믿음은 훗날 김구의 도덕과 정의의 근간이 되었다.
④ 회초리를 든 어머니
임시정부는 늘 가난했다. 상하이 융칭팡에 살 때 마을 뒤 쓰레기장이 있었다. 그녀는 밤에 나가 쓰레기장을 뒤졌다. 중국 사람들이 채소를 다듬고 버린 찌꺼기를 모아 소금에 절여 음식을 만들었다.
남경에 살 때 임시정부 요인들과 청년들이 그녀의 생일 상을 차려드리려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그녀는 돈을 갖고 있는 엄항섭을 불러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만들어 먹을 테니 그 돈을 달라고 한다. 생일날, 그녀는 축하연을 연다고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청년들을 자신의 셋방으로 초대한 뒤 식탁 위에 보자기는 내 놓았다. 보자기엔 권총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생일이 무슨 놈의 생일이야? 그런데 쓸 돈이 있으면 나라 찾는 일에 쓰도록 하게. 이 총으로 왜놈들을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만 내 속이 편하겠네.”
어느 날 나석주 의사가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와 함께 지내면서 백범의 생일 임을 알고 자신의 옷을 저당 잡혀 고기와 반찬거리를 사서 곽낙원에게 갖다 드렸다. 그러니까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자결하기 직전의 일이다. 그녀는 손님들이 돌아가자 회초리를 들고 들어와 아들의 종아리를 걷어 올리게 했다. 그리고는 50살이 넘은 아들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자기의 생일 같은 사소한 일을 동지들에게 알려서 옷을 저당 잡혀 생일상을 차려먹다니……” 그제서야 어머니의 뜻을 안 백범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잘못을 빌었다.
임시정부는 궁핍한 생활을 이어오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하와이 교민을 비롯한 각계에서 군자금과 기부금이 들어와 한시름 놓았다. 재정이 넉넉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젊은 인사가 이런 말을 했다. “돼지고기라도 좀 사서 구워 먹었으면……” 그 소리를 들은 곽낙원은 호통을 쳤다. “동지의 핏값으로 고기를 구워 먹자고? 너는 독립군 자격이 없는 놈이다!”
⑤ 임시정부의 어머니
상하이로 망명한 김구 곁에는 언제나 곽낙원이 있었다. 낯선 땅, 물 한 모금도 귀하던 시절, 그녀는 동지들의 옷을 꿰매고, 밥을 지으며, 병자를 돌보았다. 그녀가 밥을 지을 땐 늘 이런 기도가 따라붙었다.
“이 밥 한 그릇이 나라를 살리게 하소서.”
임시정부 요인들은 그녀를 ‘임정의 어머니’라 불렀고, 젊은 독립운동가들은 “어머니의 밥 한술이 전선의 총알보다 힘이 셌다.”고 회상했다.
⑥ 광복보다 먼저 떠난 어머니
곽낙원은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39년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언은 독립하여 돌아가는날 자신의 유골을 고국 땅에 묻어 달라는 것과 두 손자들도 나의 독립을 위해 애쓰라는 곳이었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러졌지만, 그날 임시정부 사람들은 모두 울었다. 그녀의 장례를 치른 김구는 『백범일지』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는 내 생의 스승이자, 조국의 기둥이었다.”
⑦ 근대사적 의의
곽낙원은 단순한 어머니상이 아니라, 행동하는 신념의 상징이었다. 그녀의 삶은 종교와 윤리, 민족과 인간애가 만나는 지점이었다.김구의 정의감과 임정의 인내,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은결국 한 어머니의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⑨ 다온의 한줄 정리
그녀는 말없이 임시정부를 일으킨 보이지 않는 기둥이었고, 그녀의 헌신이 수많은 청년의 나라를 지켰다.
⑩ 출처
국가보훈부 공훈록 「곽낙원」
『백범일지』(김구, 1947)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기록집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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