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 인물 개요
조중응(趙重應, 1856~1919). 한성부 출신의 양주 조씨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식견으로 이름을 얻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조국의 자주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는 ‘북방남개론(北防南開論)’ 을 주장하며 외세의 침탈을 ‘조선의 생존전략’으로 포장했다. 그때 그는 몰랐을까. 지식이 조국을 구하는 칼이 될 수도, 조국을 찌르는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② 주요 행적
1890년대 후반, 조중응은 법부 형사국장, 외부 교섭국장 등을 지내며 정계의 중심에 섰다. 1893년 서북변계 조사위원으로 러시아와 만주 지역을 시찰한 뒤, “조선은 러시아를 막고 일본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훗날 그의 배신을 정당화하는 사상의 씨앗이 된다. 1907년, 이완용 내각의 법부대신이 된 그는 정미7조약 체결에 적극 협조하며 조선의 군대 해산을 승인했다. 이 조약은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굴러 떨어진 첫 문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현실적 선택’이라 불렀다. 1910년 경술국치 때, 그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문명 개화의 결과’라며 찬동했고 대가로 자작(子爵) 작위를 받고 중추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일본 통치의 합리화를 법의 언어로 정당화하며, ‘법으로 조국을 배신한 자’로 남았다.
③ 근대사적 의의
조중응은 지식으로 배신을 설계한 관료였다. 그의 북방남개론은 식민지화를 위한 사상적 문을 열었고, 그의 법은 일제의 통치에 명분을 제공했다. 그는 지식인의 논리를 빌려 “이것이 나라를 위한 길이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묻는다. 그의 논리가 조국을 살렸는가, 죽였는가.
④ 오늘의 시사점
조중응의 이름은 ‘사상을 팔아 명예를 산 지식인’의 상징이다. 그의 배신은 감정이 아니라 계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계산은 언제나 권력 쪽으로 기울었다. 법을 지키던 자가 법으로 조국을 재판했고, 그의 이성은 결국 조국의 혼을 처형한 논리가 되었다.
⑤ 다온의 한줄 정리
“이성의 얼굴로 조국을 재판한 법의 사형관, 논리로 배신을 설계한 이름 — 조중응.”
⑥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독립기념관 《친일인명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매일신보》(1910년 8월호, 경술국치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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