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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팔은 자

제5편 권중현 — 성웅의 피로 권세를 씻은 자

by daonara 2025.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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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 - AI 생성 이미지

인물 개요

권중현(1854~1934)은 충청북도 영동 출신으로, 조선 명문 무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권율 장군의 9대손, 모친은 이순신 장군의 9대손으로, 성웅(聖雄)’의 충절이 한 혈통에 모인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피를 따라가지 못했다. 음서(蔭敍), 즉 조상의 공훈으로 벼슬에 나서는 제도로 관직에 진출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가문의 이름으로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삶은 충의의 혈통이 권세의 욕망으로 변질된 한 예로 남았다.

 주요 행적

권중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당시 외부대신(오늘날의 외교부 장관 격)으로서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서명자, 을사오적중 한 명이었다. 그의 서명은 국권 상실의 결정적 순간이 되었고, 조선의 자주권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그는 고종에게부득이하게 조약 체결을 승인했으니, 죄를 용서하라는 사직 상소문을 올렸다. 겉으로는 뉘우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쇼였다. 그 후에도 통감부의 자문관, 중추원 고문 등으로 일제에 적극 협력하며 조선의 침탈을 제도적으로 돕는 위치에 있었다.

 근대사적 의의

권중현의 행적은가문의 영예권세의 방패로 변질된 전형이었다. 그는 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자신의 관직과 재산을 지키는 데만 몰두했고,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의 도덕적 몰락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성웅의 후손이 조국을 배신한 사례로서, 그의 이름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았다.

 오늘의 시사점

명문가의 혈통은 덕의 보증이 아니다. 조상의 공훈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은 결국 조상마저 욕되게 만든다. 권중현의 선택은 충의의 집안이 어떻게 탐욕의 이름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준다.

 다온의 한줄 정리

 충의의 피로 태어나, 배신의 이름으로 끝났다. 성웅의 후예였으나, 조국을 팔아 권세를 산 자권중현.”

⑥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독립기념관 《친일인명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종실록》 42 (1905 11 18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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