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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21

제29편 이상설 — 조국을 향한 혼, 바다로 흩어지다 ① 인물 개요이상설(李相卨, 1870~1917)은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외교 독립운동가이자, 민족교육의 선구자였다.그의 생애는 칼이 아닌 ‘지식’과 ‘의지’로 싸운 여정이었다. “조선의 독립은 총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시작된다.” 그가 일생을 걸쳐 남긴 신념이었다.② 학문과 교육으로 세운 독립의 꿈함경북도 경원 출신의 이상설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관립 법관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법관으로 임용되었다. 하지만 일제의 불의한 재판과 부패한 관료제 속에서 정의로운 판단이 억눌리는 현실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그는 결국 관직을 버리고, 조국의 미래는 무력보다 교육에 있다고 믿었다. 1906년, 간도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조선인 최초의 근대식 민족학교 서전서숙(瑞甸書塾) 을 설립했다. 서전서숙은 단순한 학교가.. 2026. 2. 27.
제28편 장준하 — 신념으로 걷는 자유의 길 ① 인물 개요장준하(張俊河, 1918~1975)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양심의 상징’으로 불린 언론인·독립운동가·사상가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강제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해 중국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는 광복군 장교로 활동하며 조국 해방의 꿈을 품었고, 해방 후에는 언론과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와 도덕적 사회를 세우려 했다. ‘사상계’ 발행인으로서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의 역할을 다했으며, 군사독재에 맞서 양심과 자유의 가치를 지켰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장준하는 일본군 보급병으로 복무하던 중, ‘적의 군대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으로 1944년 만주에서 탈출해 중국 충칭으로 향했다. 목숨을 건 탈출 끝에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 2026. 2. 25.
제27편 여운형 — 좌우의 경계에서 조국을 꿈꾸다 ① 인물 개요온화한 미소 속에 강철 같은 결의를 품은 사상가, 정치가. 그는 해방 이전엔 언론인으로, 해방 후엔 통합의 정치가로 살았다. ‘조선의 미소’ 여운형(1886~1947). 그 이름은 지금도 ‘하나의 조국을 준비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 일본 유학과 독립의 자각여운형은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일찍부터 신교육을 받아 일본으로 유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차별을 겪으며 ‘지식만으로는 독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19년 11월, 일본 도쿄 제국호텔 연설에서 그는 외쳤다. “조선의 독립 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우리가 세우려는 나라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다.”이 연설은 단순한 독립선언이 아니.. 2026. 2. 1.
제25편 김구 — 인간 김창수에서 백범 김구로 “내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내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백범일지』 「나의 소원」① 인물 개요김구(金九, 1876~1949)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통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은 지도자였다. 호는 백범(白凡)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의병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탈옥에 성공하였다.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광복 이후에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통일과 자주독립의 길을 모색하였다. 그의 생애는 『백범일지』라는 자서전 속에 그대로 녹아 있으며, 그것은 한 인간의 고백이자 한 민족의 기록이다.② .. 2025. 12. 29.
제24편 이봉창 — 도쿄 한복판에 던진 정의의 폭탄 ① 인물 개요이봉창(李奉昌, 1900~1932) 은 서울 용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일제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진 의열투사이다. 그는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나 문창학교 4년 과정을 수료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과자점 점원, 용산역의 역부로 일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192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으나, 그곳에서 그는 진정한 ‘조선인 차별’을 체감했다. 여관에서는 숙박을 거절당했고, 식당에서는 식기가 따로 주어졌으며, 길을 가다 일본인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는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인 행세를 했다. 수준급의 일본어를 구사하고 의식적으로 일본인의 행동을 쫓으며 그들의 습성을 몸에.. 2025. 12. 18.
제23편 윤봉길 —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난 청년 ① 인물 개요윤봉길(尹奉吉, 1908~1932)은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청년 의사로, ‘상하이 홍커우 공원 의거’로 세계를 놀라게 한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매헌(梅軒)으로,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의 형편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민족의식과 자주정신을 키워 나갔다.그는 농촌계몽운동과 청년 교육에 힘썼고,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193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1932년 4월 29일, 일본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 행사장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제3함대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상하이 파견군 사령관 등을 처단하였다.② 3·1운동의 충격1919년 3월, 예산에서도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2025.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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