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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혼(國魂)을 살린 자28

제3편 신돌석—민초의 칼로 나라를 지킨 의병장 ① 인물 개요1900년대 초, 조선의 하늘은 이미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경북 영덕의 한 농촌에서 양반의 피를 타고났으나 평민의 옷을 입고 세상을 일으킨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신돌석(申乭石, 1878~1908).본관은 평산(平山),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이었다. 조부 때 가세가 기울어 아버지 신성구는 농사와 잡역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신돌석은 어릴 적부터 밭을 갈며 무예를 익혔다. 혈통상으로는 양반이었지만, 현실의 삶은 완전한 평민이었다. 그는 서당 대신 들판에서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배우며 자랐고, 그 속에서 **‘신분보다 인간이 먼저다’**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 외쳤다. “나라를 잃으면 백성도 없다. 우리가 스스로.. 2025. 10. 30.
제2편 이상재 — 양심으로 나라를 지킨 스승 ① 인물 개요이상재(李商在, 1850~1927)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교육·종교·계몽운동의 세 분야에서 민족정신을 지켜낸 지도자였다. 본관은 한산(韓山),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출신이다.그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했으나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하며 기존의 관료 체제에 회의를 느꼈다. 이후 개화정책을 추진하던 박정양의 식객으로 들어가 조언과 문서 업무를 맡으며 보좌했다. 1881년, 박정양이 일본 신사유람단(조사시찰단)의 일원으로 파견될 때 비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 일본의 근대 문명과 교육제도를 직접 목격했다. 또한 1883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되자 비서로 함께 미국에 건너가 워싱턴의 학교, 교회, 의회 등을 견학하며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 근대 교육의 본질을 체험했다... 2025. 10. 30.
제1편 홍영식 — 근대의 문을 연 사람 ① 인물 개요홍영식(洪英植, 1855 ~ 1884)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개화파 혁신가로, 한국 근대 우편 제도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조선을 **‘소통하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행정가형 개화파였다. 우정총국의 설립과 근대 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조선이 세계와 처음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홍영식은 젊은 시절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우체국·전신국 등 서양식 통신 제도를 조사했다. 그는 “국가의 힘은 정보의 속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 후 일본의 ‘우편의 아버지’ 마에지마 히사오를 만나 조선에 맞는 근대 우편 체계를 설계했다. 그 결과, 1884년 10월 1일 조선은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세계 22번째 우편 국가로 등재되었다. 홍영식은 .. 2025. 10. 29.
기억의 자리 - 국혼(國魂)을 부르다 총칼보다 단단한 건 꺼지지 않는 마음이었다.누군가는 붓으로,누군가는 칼로,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 혼을 지켰다.나라가 사라져도,그 마음이 꺼지지 않았다면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그 마음의 이름, 국혼(國魂).이곳은 그 혼을 다시 불러내는 자리이자,잊히지 않기 위해 우리가 다시 쓰는 기록이다.💙 by 다온아라 2025.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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