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47 제2편 박제순 — 독도의 침묵, 나라를 팔아넘긴 입 ① 인물 개요박제순(朴齊純, 1858~1916)은 경기도 용인군 수여면 상도촌(현 용인시 처인구) 출신으로, 반남 박씨 가문 출신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호는 평재(平齋)였다. 조선 말 과거에 급제하여 내무·외무·참정대신 등을 지냈으며,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을사오적의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그의 집안은 왕실과 먼 혈연으로 이어진다는 설도 있으나, 사료상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는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초기에는 관료로서 개화 정책에 참여했으나,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세력이 조선에 깊이 뻗치자 일본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꿨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충청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일본군 및 관군과 연합하여 동학농민군 진압에 나섰다. 1905년 외부대신(外務大臣) 으로 있으면서 을사조약 체결에.. 2025. 10. 30. 제1편 이완용 — 국혼을 찢은 이름 “나라를 팔아 부귀를 샀지만, 그 이름은 영원히 역사의 저주가 되었다.”① 인물 개요이완용(李完用, 1858~1926)은 을사오적·정미7적·경술국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인물로, 근대 조선의 ‘배신의 상징’으로 남았다. 경기도 광주 낙생면(현 성남 분당) 출신으로 몰락 양반가의 차남이었으나, 10세 무렵 33촌 지간의 족숙 이호준(감찰공파)의 양자로 들어가며 권력가 가문의 문턱에 서게 된다. 이 입적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양부의 인맥을 통해 조정에 진입했고, 이후 미국공사관 통역관으로 발탁되며 외교 감각과 일본식 근대 질서를 흡수할 기회를 얻었다.② 권력과 배신의 길1895년 을미사변 직후, 김홍집 내각의 학부협판으로 발탁되어 친일 개화파의 핵심이 된다. 1905년 외부대신으로 을사늑약 서명, ‘을사오적.. 2025. 10. 30. 제1편 홍영식 — 근대의 문을 연 사람 ① 인물 개요홍영식(洪英植, 1855 ~ 1884)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개화파 혁신가로, 한국 근대 우편 제도의 창시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조선을 **‘소통하는 나라’**로 만들고자 했던 행정가형 개화파였다. 우정총국의 설립과 근대 통신망의 구축을 통해 조선이 세계와 처음으로 연결되는 문을 열었다.② 주요 활동 및 사상홍영식은 젊은 시절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우체국·전신국 등 서양식 통신 제도를 조사했다. 그는 “국가의 힘은 정보의 속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 후 일본의 ‘우편의 아버지’ 마에지마 히사오를 만나 조선에 맞는 근대 우편 체계를 설계했다. 그 결과, 1884년 10월 1일 조선은 우정총국을 설립하고 세계 22번째 우편 국가로 등재되었다. 홍영식은 .. 2025. 10. 29. 망각의 자리 - 국혼(國魂)을 버리다 『국혼(國魂)을 판 자』 — 역사가 그 이름을 불러야 하는 이유나라가 무너질 때, 칼을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는양심을 팔고 권력의 품으로 달려간 자들이었다.그들은 조국을 팔았고, 백성을 팔았으며, 결국 자기 이름조차 팔았다.그러나 이 공간은 단죄를 위한 곳이 아니다.오히려 망각을 거부하기 위한 기록의 자리다.역사는 잊은 죄를 가장 무겁게 심판한다.여기 모인 자들은 한때 조선의 권력을 누렸지만,결국 스스로 그 혼을 내던진 이들이다.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름으로써,나라의 혼(魂)이 다시 깨어나길 바란다.© 다온아라 역사시리즈 — 『조선의 불꽃 : 빛과 그림자』 2025. 10. 29. 기억의 자리 - 국혼(國魂)을 부르다 총칼보다 단단한 건 꺼지지 않는 마음이었다.누군가는 붓으로,누군가는 칼로,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그 혼을 지켰다.나라가 사라져도,그 마음이 꺼지지 않았다면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그 마음의 이름, 국혼(國魂).이곳은 그 혼을 다시 불러내는 자리이자,잊히지 않기 위해 우리가 다시 쓰는 기록이다.💙 by 다온아라 2025. 10. 29. 이전 1 ··· 5 6 7 8 다음 반응형